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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움

억울함으로 인한 고통스러울 정도의 슬픔

by 한선생

A씨는 4남매의 맏딸이었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던 시대여서 그랬는지, 집안에서 A씨의 희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가고 싶었던 대학도 포기하고 공장을 다니며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고, 동생들 결혼할 때도 적지 않은 돈을 보탰다. 학비며 어학연수며, 막내 동생 사업 자금에 부모님 생활비까지... 가족들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억울한 적도 많았지만 이것도 팔자려니 하고 살아왔던 A씨는, 믿었던 어머니마저 투자사기를 당하고 손을 벌리자 급기야 서러움이 폭발하고 말았다.


서러움은 억울함에서 비롯된 고통스러울 만큼의 슬픔이다. 억울함은 부당함에 대한 분노다. 자신의 의도나 의지와 관계없이 불이익을 받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얻으면 부당하다는 지각과 함께 분노가 치솟는데, 이때 부당함이 바로 해결되지 않고 다른 이들마저 나의 부당함을 알아주지 않으면 분노에 답답함이 추가되면서 억울하다는 감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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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억울함이 지나치면 고통스러운 내수용감각이 발생하고(원통함), 원통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무력감에 슬픈 감정이 발생한 것이 서러움이다.


서러움: 원통하여 슬픔

*원통함(몹시 억울하여 가슴이 아픔)


생물학적 속성 및 기능

서러움의 생물학적 감각은 답답함과 슬픔의 느낌이다.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은 체내의 기혈이 막히고(기막힘) 호흡이 곤란하며 소화가 안되는 등 순환이 차단당한 감각으로 경험된다. 여기에 희망과 기대의 상실에서 오는 막막함과 무력함이 고통스러울 만큼의 슬픔을 유발한다.


서러움은 억울한 일을 겪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다했음에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지각한 후(절망) 통제감을 완전히 상실한 데서 오는 슬픔이다.


서러움은 자기관여적(자의식적)인 슬픔이다. 서러움은 갈 길을 잃은 분노가 자신으로 향하면서 새삼스럽게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느끼는 감정으로 한(恨)의 경험과정의 하나로 꼽힌다. -> 한(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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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상황을 제공한 상대나 상황에 대한 분노는 매우 격렬하여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억울함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려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희석시킬 필요가 있는데 억울함은 이 과정에 의해 서러움으로 변화한다.


한편, 서러움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억울함과 무력감을 주위에 알리는 효과가 있다. 가까운 사람의 서러움을 알게 된 주변인들은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위로나 물질적 지지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서러움의 문화적 맥락

서러움은 한국의 대표적 문화적 감정으로 한(恨)의 경험과정과 감정의 질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감정이다. 높은 자기가치감과 주관적인 감정경험 방식 때문에 쉽게 억울함을 느끼는 한국인들은 억울함의 속성상 분노, 즉 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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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 사회였던 과거, 이러한 억울함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화를 다스리고 일상을 이어가야 했다. 그 방법이 부당함을 준 상대보다는 자기 자신에게서 부당함의 원인을 찾는 것이었으나(내 탓이다), 그 결과는 고통스러웠다. 서러움은 이러한 심리 과정의 결과다.


표현/이해의 팁

서러움은 매우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따라서 그 표현도 크고 격렬하다. 고통을 견디는 몸짓, 답답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표현된다. 가슴을 치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가슴을 치는 행동은 답답함의 표현이기도 하고 원통함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렸기 때문에 하는 자책과 자탄의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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