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들을 쌓아 만드는 샌드위치

음미노트10. 샌드위치

by 원테이크


시작은 스타벅스 샌드위치였다. 달달한 크랜베리와 마요네즈 소스가 버무려진 치킨 샌드위치와 뜨아 한 잔. 사회초년생때 사먹던 그 샌드위치 세트가 아침의 기준이 될 줄은 그 땐 몰랐다.


한 입 베어물면 입 안 한 가득 들어오는 풍성함이 좋았다. 우적우적 씹으면 빵의 고소함과 치킨의 감칠맛이 느껴지고 느끼해지려고 할 때 토마토가 입가심을 해준다. 꼭 아메리카노를 같이 마셔주어야 한다. 입안을 깔끔하게 해주면서도 빵의 향을 더 살려주는 것 같아서. 내일 아침엔 스타벅스에 들려야지, 생각하면 전날 밤 새벽 두 시에 퇴근을 하면서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요즘은 샌드위치 취향이 약간 업그레이드 되었다. 스타벅스 샌드위치는 알 수 없는 가공식품이 많이 들어가고 지방 비율도 높아 잘 사먹지 않는다. 대신에 담백한 샌드위치 가게를 디깅해서 찾아낸다.

일단 사워도우라고 검색을 하자. 그러면 식사빵을 잘 하는 베이커리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깔끔한 햄과 품질이 괜찮은 치즈, 토마토와 신선한 채소를 소스바른 사워도우에 끼워넣은 샌드위치가 있을 것이다.




스타벅스 샌드위치처럼 입안 가득 푸짐한 느낌은 아니다. 대신에 발효된 사워도우의 향을 해치지 않는 단조로운 재료들이 켜켜이 맛을 채운다. 햄과 치즈는 짭쪼롬하면서도, 빵에 발린 소스가 약간 달달한지 딱 적당한 단짠의 밸런스가 좋은 맛. 역시나 아메리카노와 페어링을 해주어야 한다. 라떼를 같이 먹으면 먹을 땐 맛있다는 착각이 들지만 일어나면 괜히 배불러질 수가 있다.


아침에 부담 없이 먹기 좋기로는 사워도우 샌드위치가 단연 1등. 하지만 파는 곳이 흔하지는 않다보니 유행하는 베이글 샌드위치로 눈길을 돌려본다. 마침 출근길에 샌드위치 리뷰가 좋은 베이글 집이 있어서 한번 들러보았다.




베이글은 특히나 혈당이 많이 오르는 빵이라, 일부러 찾아 먹지는 않던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 꽤 많이 관대해졌다. 음식을 선택할 때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몸에 좋은지 아닌지만으로 결정하기엔 인간의 마음이 너무나 복잡다단한 걸. 특히나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리면 그렇다.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이상 그 마음을 너무 눌러내지 않고 싶어졌다. 대충 좋아하는 거 아니고, 진짜 좋아하는 거라면 말이다.


바로 이른 아침 아직 텅 빈 회사에서 고요히 먹기를 고대하며 들고 가는 베이글 샌드위치처럼.




아지트로 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종이 포장을 열어본다. 샌드위치와 함께 물티슈며 휴지며 비닐장갑도 들어있다. 배려가 엄청난 가게로군.


허니 소스가 발린 베이글에 닭가슴살과 베이컨, 크림치즈가 들어가 있다. 단백질 합격. 베이글도 꽤 정석적인 맛이라 샌드위치로 먹기 딱 좋았다.



반쪽만 먹을까, 하다가 든든하게 하나를 전부 먹었다. 칼로리가 상당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지만 점심과 저녁을 가볍게 먹기로 한다. 이 샌드위치로 아침을 시작하니 꽤나 부유한 마음이 들었다. 출근이 버겁지만 쌓인 일도 몽땅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나는 거다.


실은 베이글 샌드위치에 관심이 생긴 건 최근 베이글 전문점에 처음 가본 것도 계기가 되었다. 3대 베이글 중에 하나라며, 동생이 코끼리 베이글은 무조건 먹어봐야한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늘상 궁금했었다.


건강검진 결과가 마음에 걸려, 휴가를 내고 대학병원 검사를 받으러 다녔던 정신 없던 한 때였다. 병원만 다녀오기 괜히 억울해서 지도앱을 한참 뒤져보았다. 저장해둔 "샌드위치" 카테고리에서 인사동에 있는 코끼리 베이글 발견, 오늘은 여기다.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크림치즈가 들어간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를 골랐다. 평일 오후라서 사람이 없고 조용한 자리가 있었다. 회사 아지트에서 홀로 샌드위치 먹방을 하는 사람이 가장 좋아할만한 분위기랄까.


창가 자리에서 오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면서 숨을 돌렸다. 몇 번의 검사로 병원까지 먼 길을 오가는 데 꽤 지쳐있었다. 휴가임에도 회사 메신저 알람에 신경써야 했다. 주문한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테이블 위에 딱 올리니, 그제서야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코끼리베이글 알래스카 샌드위치


내 입맛에는 크림치즈가 다소 많고 느끼한 편이었지만, 화덕 베이글이라는 기본 베이글의 맛이 훌륭했다. 케이퍼가 느끼함을 달래주고 토마토가 개운함을 더해주니, 베이글 샌드위치 하나가 뚝딱 사라진다.




나에게 외식 1순위는 언제나 샌드위치다.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건지, 샌드위치를 먹는 행위를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샌드위치를 먹으면 잠깐은 일상을 탈출한 기분이 든다. 특히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바깥 공기를 마시며 먹을 때가 가장 좋다. 그러면 어느 외국 샌드위치 가게에서 여유를 부리는 기분이 든다.





샌드위치는 이상하게 가볍다.


복잡한 조리도 없고, 각잡고 포크와 나이프를 잡지 않아도 된다. 샌드위치 단면에는 산뜻한 재료가 겹겹이 쌓여 있다. 그 재료들이 입 안에서 비로소 완전히 조화가 되는 그 순간이 좋다.


샌드위치의 특별함을 지켜내려면, 평범한 몇 번의 날들을 샌드위치 재료처럼 쌓아야 한다.


반복되는 출근길에 무기력해질 때, 모처럼 쉬는 주말에 한껏 기분을 내고 싶을 때. 딱 그 때 꺼내 먹는 샌드위치가 유난히 더 맛있다. 그러면 이내 하루를 시작할 기운이 완전히 충전된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만큼 샌드위치를 아껴 먹는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