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며느리의 최애 메뉴

음미노트08. 경장육사

by 원테이크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시가 주변 식당에 파티를 하러 가기로 했다. 남편이 이번엔 내가 먹고 싶은 식당을 예약해 보라고 한다. 매번 졸졸 쫓아만 다니다가 막상 식당을 찾으려니 어렵다. 그 동네 진짜 맛집은 지도앱에 잘 없어서 그렇다. 그곳은 바로 중국 교포들이 모여사는 대림동이기 때문이다.



진짜 중국 식당에서는 생일자가 있으면 '장수면'을 줍니다. 꼭 서비스 받으세요~



결국 남편에게 SOS를 친다. "우리 친척 모임때 자주 가던 중국 요리집 이름이 뭐야?" 지난번에는 훠궈나 반티엔야오같은 특식을 먹었으니, 이번 생신에는 내가 처음 대림동에서 중국 음식을 먹었던 그 식당, 메뉴판에 없는 요리가 없는 단골 식당에 오랜만에 가고 싶었다.



진짜 중국 식당 메뉴판에는 오만가지 요리가 있다(한국어 번역이 엉망이니 사진으로 고르세요)



그 식당에서 남편의 가족들에게 처음 인사를 드렸다. 낯선 얼굴들이 한바탕 모여있었다. 친척 일가가 모두 모인 풍경을 정말 오랜만에 보았던 것 같다. 우리집에서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이십년 전에나 볼 수 있던 모습이다.


남편은 조선족 사투리를 거의 안 쓰기 때문에, 친척분들이 쓰는 센 억양의 말투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나 시끌벅적하게 각자 할 말을 하고, 둥근 테이블을 연신 치며 중국식 건배를 하던지. 왁자한 분위기에 기가 쭉쭉 빨려나갔다.


정신은 쏙 빠졌는데, 입맛은 완전히 붙잡혔다. 테이블 위에 올라와있는 강렬한 색상의 음식들은 처음 맛보았지만 생각보다 생소하지는 않았다.



동북식 탕수육, 꿔바로우는 빙초산의 강렬하고 시큼한 향이 나면서도 달달했고, 쫀득하면서도 바삭했다. 큰 대접에 쌓여있는 건두부(포두부)와 줄기채로 수북한 고수를 집어들고 된장에 싸먹었다. 고수를 이렇게 먹어 보는 것도 신기했고, 담백한 걸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이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투성이었는데, 이상하리만큼 맛만 좋았다.


잘 먹는 나를 보며 친척분들이 연신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 음식을 정말 잘 먹네~ 너무 예쁘네~"


오랜만에 그 식당엘 가고 싶었다. 대림역에 내려 북적거리는 대림중앙시장을 한참 뚫고 가야만 나오는 진또배기 중국 식당, 종업원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 식당, 대림시장에 들어가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절대 갈 일이 없는 그런 식당 말이다.


결혼한지 벌써 몇 년이 넘었지만, 처음으로 대림동을 가는 것이 기다려졌다. 이번엔 그 식당에서 오랜만에 먹고 싶은 메뉴가 있었다. 바로 경장육사. 중국말로는 징장로우쓰라고 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경장육사(고기와 건두부), 해물마라볶음, 파이황과, 꿔바로우


중국 본토 음식은 아무래도 튀기거나 기름에 볶는 조리법이 많은데, 건강을 신경쓰는 내가 가장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경장육사다. 교포들이 '깐두부'라고 하는 넙적한 두부피에, 파채, 당근, 고수, 오이, 춘장에 볶은 고기를 함께 싸먹는 것이다. 알싸한 파와 향긋한 고수에, 고기의 감칠맛과 담백한 두부피의 맛이 정말 조화롭다.


거기다 중국식 오이무침 파이황과도 시켰다. 접시에 오이가 수북히 나온다. 족히 오이 두 개 정도는 탕탕 내려쳐서 마늘과 소금, 식초에 잘 버무렸을 것이다. 파이황과는 양꼬치같은 느끼한 중국 음식과 참 잘 어울린다.



대림중앙시장의 풍경



처음 대림동엘 갔을 때 어수선하고 어설픈 인테리어의 중국 식당이 사실 싫었지만, 이제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 크게 떠들고 마시는 분위기도 적응하지 못했고, 큰 접시에 담긴 요리를 공용 젓가락 없이 덜어먹으며 침이 섞이는 것도 영 찝찝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뭘 더 먹고 싶냐고 하면 어색하게 입만 웃으며 꿔바로우를 주문하던 내가, 이제는 징쟝로우쓰를 먹겠다고 벼른다.


다같이 징쟝로우쓰를 먹으며, 아버님이 중식 조리기능사 시험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리기능사 시험에 경장육사가 출제되면, 볶음용 돼지고기는 길게 썰어야 하고, 채소는 파채만 준비하면 된다나. 시아버지가 부쩍 요리에 관심이 많아지셔서 식탁 위 화제거리도 풍성하다.


모처럼 단골식당에서 잘 먹고 배 두드리며 대림중앙시장을 걸어나왔다. 웬일로 장이 별로 붐비지 않아 처음으로 제대로 시장 구경도 해보았다. 어찌나 물가가 저렴하던지, 채소 가게를 지나다 참지 못하고 가지와 브로콜리를 신나게 고르며 제대로 쇼핑을 했다.


언젠가 나의 부모님과 친구들도 대림동에 초대할 일이 있을까? 이제는 그 곳이 더이상 낯선 동네가 아니니 뭐가 재밌고, 뭐가 맛있는지 다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느새 대림시장을 활보하고 다니는 대림동 며느리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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