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서귀포식 웨딩

음미노트06. 돔베고기, 게우젓, 그리고 잔치커피

by 원테이크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결혼식을 내가 얼마나 고대했는지. 내향인 입장에서 기빨릴 게 분명한 어떤 사교 모임이나 파티도 반가울리 없지만, 내 영원한 절친 연년생 자매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자리라면, 더구나 아빠의 원대로 하루 종일 제주도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며 제주도식 한 상이 푸지게 차려지는 결혼식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손님 맞이를 해야했다고 하니 육지 사람들은 '미국식 결혼 같은 거에요?' 하지만, 이 웨딩은 생각하는 그런 party party와는 거리가 멀다. 이 결혼식 피로연에 어울리는 단어는 딱 하나다. 그건 바로 '잔치'.



삼십 년 전 우리 이모들이 결혼할 때는 가문잔치라는 것을 했다. 결혼식 전날 신부집에서 돼지도 잡고 소도 잡고 순대도 담는다. 마당에서는 제주도식 윷놀이가 벌어졌다. 꽤 늦은 밤까지 손님들이 집안을 가득가득 메웠다. 사촌들이랑 재밌는 놀이를 하고 하루종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방학때 했던 일을 그림일기로 그려내라고 하면 매번 결혼식에 참여한 그림을 그렇게 그렸다. 우리 이모가 꽤나 많았던 탓이다. 또 어린이였던 그 시절에도 그 잔치를 꽤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집에서 하는 잔치는 사라졌다. 그래도 종일 피로연 손님을 맞는 제주도식 결혼 풍습은 촌에서는 대부분 계속되는 것 같다. 나도 서울 공장식 웨딩홀에서 결혼을 하며 뒷 팀에 쫓겨가며 결혼식을 올리고 손님들께 서울식 부페를 제공하고도, 다시 제주서 열린 잔치에서 한복을 입고 종일 밥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께 꾸벅꾸벅 절을 했다.


아빠는 앞선 두 번의 자식 결혼식을 치르며, 웨딩 부페를 영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밥 한 그릇에 맛있는 돼지고기와 성게 미역국이 차려진 한 상이 훨씬 배부르고 먹은 듯하다는 주의다. 나이를 먹고 거울을 볼 때 점점 내 얼굴에서 부모님 얼굴이 보일 때가 있는데, 생각도 그런 것 같다. 십 년을 넘게 결혼식장 부페와 호텔 스테이크 코스 요리를 먹어보았지만,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다. 법원 결혼식장에서 갈비탕과 함께 나오는 한식 차림이 꽤 괜찮지 하고 생각할 때마다 아빠 닮아 그런가..싶다.


정말 오랜만에 그런 제주식 잔칫상을 먹는 날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돔베고기(제주도식 수육)는 얼마나 맛있을까, 성게 미역국 정말 오랜만에 먹는다, 또 뭐가 나올까? 메이크업을 받으러 나온 새벽부터 먹을 생각을 했다.


먹는 것에 진심인 우리 집안은 식이 시작되기 전에 잔칫상으로 아침부터 든든히 먹었다. 상상하던 제주도 밥상 그대로다.



돼지고기 상태는 꽤나 훌륭했고, 성게는 많이 들진 않았지만 예전에 먹던 잔칫날 미역국 바로 그 맛이다. 갈치구이는 엄마가 집에서 밀가루를 살짝 묻혀 구워주던 방식이라 어찌나 익숙하던지. 게다가 제대로 된 게우젓이 나왔다. 전복과 내장이 참기름에 아주 간이 딱 맞게 무쳐진 젓갈이다. 그래, 이게 바로 서귀포식 웨딩이다.





잔치 음식을 제대로 마무리 지으려면 반드시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 커피는 제주 웨딩 전문 바리스타(?)가 내리는 것으로서 직접 가서 주문을 하거나 나처럼 피로연장을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는 신부의 형제들(혹은 심부름꾼)에게 청해야한다.


바리스타 님들은 피로연장 한켠에 있는 테이블 두어 개를 차지하고 앉아있는다. 24시간 돌아가는 업소용 스텐 전기 물끓이기 포트는 그들 허락 없이 쓸 수가 없다. 고향의 아빠 갑장(동갑내기를 말함) 모임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서 늦은 오후까지 수다도 떨다가, 커피도 착착 타주시다가 놀다 간다.


"잔치커피 4개랑 보리차 2개, 블랙 1개 줍써"


블랙은 모두가 아는 블랙 커피. 카누로 제조한다. 보리차는 아주 연한 블랙커피를 말한다. 카누를 타고 종이컵에 온수를 충분히 담아주어야 한다. 대망의 잔치커피란 바로 맥심 모카골드 믹스커피다. 왜 하필 잔치커피라고 부르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잔치를 먹고 나면 입가심은 아무래도 달달한 믹스가 좋아서 잔치커피라고 하나?





"잔치커피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육지사람인 남편한테 이모들 결혼할 시절 우스개로 들은 얘길 알려주며 깔깔댔다.


"뭐긴 뭐야, 웨딩 커피여~ 꺌꺌~"



잔치커피 바리스타 체험하기


커피도 타고 손님들 시중 들기 바빠 점심은 먹는둥 마는둥 하고, 저녁 여섯시가 거의 다 되어 우리 식구들끼리 잔칫상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피로연장을 종횡무진하면서 손님들을 신경쓰고 챙긴 우리 부부와 막내동생 부부의 모습에 아빠는 꽤 흡족해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자식 결혼에 진짜 서귀포식 웨딩을 제대로 치렀으니 말이다.


결혼식에 가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맛있는 것을 먹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그 자리를 함께 함으로써 왁자지껄한 축하의 풍경이 되어 줄 수 있는 게 기쁘다. 일상에서 생각보다 무엇을 축하할 일이 드물다. 누굴 만나더라도 웃는 얼굴로, 예쁜 말로 좋은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축하의 자리가 점점 귀해지는 것 같다.


하루종일 대접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하루 종일 유난을 떨면서, 맛있는 것을 나누면서 축하하는 일. 마음 넘치게 축하할 수 있어 행복했다.


다시 한번 동생의 결혼을 나지막이 축하해본다.


그 돔베고기...맛있었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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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