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장소가 레이캬비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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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10월은 밤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확연히 겪을 수 있는 때다. 한 여름의 ‘백야’일 때는 밤 12시에 해가 져서 새벽 3시쯤 해가 뜨지만, 겨울인 12월이 오면 오전 11시쯤 해가 떠서 오후 3시면 해가 진다. 여름의 아이슬란드를 경험해보지 않아서 환한 밤이라는 ‘백야’가 낯설다. 내가 머물렀던 10월 중의 아이슬란드는 9시쯤 해가 뜨고 5시쯤 해가 졌다. 즉, 아침 7시 30분에 출근을 한다면 자동차의 전조등을 켜 길을 비춰야 할 정도의 어둠을 만나게 된다.
나는 만삭인 친구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그곳엔 친구의 남편과 딸, 검은 개 하나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딸 케이티가 유치원에 가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었다. 나의 친구는 케이티가 이를 닦고 옷을 입는 것을 돕고 유치원 갈 준비를 했고, 나는 우리가 아침 먹은 것을 정리했다. 케이티는 곧 만 4살이 되는데 스스로 이를 닦고 옷을 입었다. (물론 케이티의 부족한 부분은 엄마가 채워주었다) 케이티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하면 엄청 화를 냈고, 가끔은 화가 나서 울었다. 나의 친구는 케이티가 스스로 하려고 할 때면 한숨을 쉬었지만 끈기 있게 기다렸다. 기다리지 못하고 케이티가 하는 것에 손을 대는 나에게 케이티는 한국말로 ‘(내가 하게 내버려 둬) 그만해 이모!’라고 말했다. 내가 케이티를 아기처럼 대한 것이 꽤나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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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가 유치원에 간 뒤에 만삭인 나의 친구는 새로운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내 아이슬란드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만삭으로 자기 몸도 무거운데 가족들을 챙기고 게다가 나까지! 나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 친구는 직접 운전을 하여 골든서클이라고 불리는 아이슬란드 3대 여행지로 나를 데려가 주었는데, 이는 각각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싱벨리어 국립공원, 지열로 뜨거워진 물이 뿜어지는 게이시르, 아이슬란드어로 황금 폭포를 뜻하는 굴포스로, 나는 지구라는 놀라운 생명체를 피부에 맞닿을 정도로 느낄 수 있었다.
유라시아판과 아메리카판이 벌어지는 씽벨리어 국립공원(thingvellir national park)에서 절벽처럼 보이는 지각판의 끝과 끝을 보며 그 사잇길을 걸었다. 이 길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넓혀진다고 친구가 설명해 주었다. 또한 씽벨리어 국립공원은 최초의 의회(알띵그, Althing)가 열린 장소인 동시에 당시의 법 집행이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 아름다워 보이는 이곳의 호수나 평야에서 죄수들을 처형하거나 물에 빠트려 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법을 제정하는 입법부와 그에 따라 재판을 내리는 사법부, 교도소를 관리하는 행정기관인 법무부가 별도로 운영되는 현대 한국의 모습에 비하면 초기의 법 시스템은 무자비했구나. 여튼 지금도 아이슬란드의 의회는 알띵기(Althingi)라고 불린다.
간헐천이라 번역되는 게이시르(Geysir)는 사실 하나의 간헐천을 말하며, 그 주변에 다른 이름을 가진 여러 간헐천이 모여있었다. 지열로 물이 100도 가까이되는 것, 위로 분수처럼 폭발하는 것, 물 색이 소다맛 아이스크림 같은 하늘색 우윳빛을 띄는 것도 있었다. 간헐천이 모여있는 이 지역에서는 땅에서 수증기가 솔솔 올라오며 유황냄새가 났다.
관광객들에게 단연 인기 있었던 이름 모를 간헐천은 10-15분마다 폭발하여 모두들 그 장면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친구는 아이슬란드 거주 10년 차답게 ‘곧 폭발한다’며 그 전조증상을 알아차렸다. 폭발은 매우 순간적이었는데 불꽃이 터지는 것과 느낌이 비슷했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었으며 짧고 강렬했다. 한국의 여러 불꽃 축제를 떠올리며 축제마다 줄 서있는 먹거리 포장마차들도 떠올렸다. 이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앞에 간식 포장마차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굴포스(gullfoss)란 아이슬란드어로 ‘gull’은 gold(금), ‘foss’는 waterfall(폭포)인데, 나는 굴포스만큼 큰 폭포를 본 적이 없어서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폭포의 물소리는 헤어드라이어 100대를(어쩌면 그보다 많이) 동시에 틀어 25층 높이에서 땅으로 끊임없이 떨어뜨리는 것 같았고,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이 빛을 받아 이곳저곳에서 새로 생겨나는 무지개에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내 얼굴에서 열릴 수 있는 모든 구멍이 다 열렸다.
이런 굴포스를 21세기의 내가 볼 수 있는 이유는 굴포스에 수력발전소가 세워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은 소녀 ‘시그리두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굴포스 바로 옆에는 그녀를 위한 기념비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다음 날 레이캬비크 미술관에서 시그리두르에 대한 사진과 전시를 봤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at day I will throw myself into the waterfall.(그날 나는 폭포에 몸을 던질 것입니다)”
전시에 걸린 시그리두르의 사진 속 눈빛에 결연함이 가득했다.
3
며칠 뒤,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 아래의 호수 요쿨살론(Jokulsarlon)으로 향하는 투어를 신청했다. 40인승 버스에 인도 사람, 독일 사람, 우크라이나 사람, 중국과 일본 사람, 한국 즉, 남한 사람이 탑승했다. (여담인데, 어디서 왔냐고 물어볼 때 ‘from korea’라고 대답하면 ‘from where?’이라고 꼭 되물어본다. 다시 대답하는 게 귀찮아서 이제는 꼭 ‘from south korea’라고 대답한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3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도시 비크(vik)에 도착하여 커피를 마셨다. 아이슬란드는 남한만 한 땅 크기를 가졌지만 인구는 약 37만 명으로 매우 작아서, 도시라고 하지만 지나는 길에 자동차 한 대를 보기 어려웠고 도시라면 응당 있어야 할 기계소리도 없었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주변에 휴게소 외에 그저 표지판과 몇 가구의 집들 뿐이었다. 이 마을에는 화산 카틀라(katla)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산다고 했다. (화산과 동명의 넷플릭스 시리즈도 있는데, 화산 폭발 후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아이슬란드에는 여전히 활화산이 존재하고, 2023년 7월 화산이 폭발한 적도 있었다. 장소는 레이캬네스 반도로 아이슬란드 공항과 유명한 관광지인 블루라군이 위치한 곳이다. 수도인 레이캬비크 근처이기도 해서 위험할 것 같지만 정작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화산이 폭발한 뒤 얼마간 흘러내리는 용암을 구경하러 가기도 한다고 했다. 위험에 대해 대비하고 그런 자연현상이 본인들의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비크(vik)에서 다시 2시간을 더 달렸다. 양방향 2차로뿐인 국도와 화산재로 만들어진 아이슬란드식 사막과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 또는 빙하 산뿐인 곳을 버스가 계속해서 내달렸다. 내 버스 짝지는 우크라이나 사람이었는데 우크라이나엔 온통 평야라서 산이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남한엔 온통 산이라 평야가 신기하다고 했다. 사람이란 언제나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출발한 지 5시간 만에 도착한 요쿨살론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이상한 곳이었다.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 위에,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수천만 년 된 빙하가 제각각의 모습으로 둥둥 떠다녔다. 화산 재가 섞여서 거뭇한 빙하, 산소가 없어서 새파란 색을 띠는 빙하가 있었다. 예쁘다고 느끼진 못했다. 그 낯선 풍광에 그냥 압도되었다. 잔잔한 물결 위에 어린이가 아무렇게나 그린 도형의 모양을 한 10개, 아니 20개, 어쩌면 그보다 많은 빙하가 유유히 떠다녔고 그것을 보며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것은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에 탄 나였다. 거대한 엔진소리를 내는 보트를 타고 떠다니는 빙하 사이를 지나갈 때 우크라이나에서 온 내 버스 짝지가 말했다.
“just enjoy the moment (이 순간을 즐겨)”
그래, 이 순간이 지나면 어떤 현실을 마주할지 모른다. 나는 미간의 주름을 폈다. 그리고 포즈를 취하는 짝지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배가 호수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호수 너머에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 산이 보였다. 빙하산 중 내가 본 끄트머리는 남색에 가까운 파란색이었다. 저게 온통 빙하라니. 그게 점점 녹고 있다니. 세상의 한쪽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니. 나는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다니. 내 짝지가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You, take a picture!(너도 사진 찍어.)”
이상한 요쿨살론에서 온갖 생각이 섞여버린 나는 웃긴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4
요쿨살론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분홍색 조명을 쏘아주는 폭포 셀야란드포스(Seljalandsfoss)에서 사진을 잘 찍는 독일인 카타리나가 내 사진을 찍어줬다. 해가 져 자세히 볼 수 없는 유명한 폭포 앞에서 카타리나는 정성스럽게 세로로 또는 가로로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카타리나와는 점심을 먹으며 친해졌는데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 하루동안의 여행을 간간이 함께했었다. 카타리나는 요쿨살론과 이어진 다이아몬드 비치(Diamond beach)의 바다를 보며 ‘바다라면 하루 종일 볼 수 있다’고 했다. 방금 빙하호수 요쿨살론을 보고 충격에 받았으며, 게다가 부산사람인 나로서는 여러 바다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비치에 그렇게 큰 감흥이 없던 터였다. (다이아몬드 비치는 검은 모래 해변이 있고, 요쿨살론에서 떠내려온 얼음 조각이 떠다녀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독일에도 바다가 있는지 물었더니 오른쪽 윗지역에 섬 근처에 있다고 했다. 카타리나는 내륙에 산다고 했다.
사진을 찍은 뒤 버스로 돌아가는 길에 카타리나와 잠시 대화할 수 있었다. 카타리나는 보통 혼자 여행을 하는데 친구를 사귄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카타리나는 왜 고맙다고 말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카타리나도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레이캬비크로 돌아와서 버스 짝지와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자신과 동행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는 뒤돌아 떠났다. 나도 그녀에게 고마웠다고 하고 ‘see you’라고 인사했다. 내 만삭의 친구가 투어버스가 내리는 곳까지 데리러 와 나를 맞이해 주었고 어두운 길을 조심히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케이티는 이미 잠들어있었다. 나도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사람들 틈에 끼여 살 때는 그것이 힘들다 느꼈는데, 이렇게 한적한 곳에 와서 오히려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내 짝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까. 카타리나는 바다가 그리워 또 여행을 떠나지 않을까. 케이티는 오늘 뭐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내 만삭의 친구가 고생을 덜 했으면 좋겠다. 온갖 생각이 뒤섞여서 나 자신조차 나를 알아차리기 힘들 땐 잠이나 자야지. 내 영혼이 이들의 평안을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