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장소가 리옹
익숙하거나 낯선 것
리옹(Lyon)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딱 2가지였다. 하나는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것, 다른 하나는 협회를 만들어 보존까지 하고 있는 식당 종류인 부숑(Buchon)에 가보는 것이었다. 나는 서울이 주는 밀도를 매우 힘들어하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새로움이 있는 부산을 좋아한다. 파리는 분명 프랑스의 수도이니 제2의 도시라는 리옹이 내가 살아왔던 부산과 같은 밀도와 딱 맞지 않을까. 파리에 사는 사람들을 파리지앵(Parisien) 혹은 파리지앤느(Parisienne)라고 부르는 것처럼, 리옹에 사는 사람들을 리오네(Lyonnais) 혹은 리오네즈(Lyonnaise)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만큼 자부심을 가진 곳. 나와 얼마큼 다르고 또 닮았을까.
구 시가지의 오래된 호텔 체크인을 기다리며 언덕 위에 있는 푸흐비에흐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Fourvière)을 향해 걸었다. 리옹 한가운데에는 Y자로 론강과 손강이 흘렀고, 론강과 손강 사이에 형성된 반도 같은 모양이 구 시가지였다. 나는 벨꾸르 광장(Place Bellecour)을 지나 구 시가지 뒤편에 위치하는 언덕을 걸어 푸흐비에흐 성당을 향해 걸었다. 우체국 옆의 법원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과 정장 차림의 남성이 손을 잡고 걸어 내려왔다. 햇볕은 좋았고, 도시는 깔끔하고 단정했다. 부산의 해운대에 달맞이 고개가 있는데, 어쩐지 그곳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조용하지만 사람들이 분명 있고, 깔끔하지만 오래된 도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 달맞이 해월정에 올라 더위를 식히던 때처럼 언덕을 걸어 올라가다 벨베데흐 공원(Jardin du Belvédère) 벤치에 앉아 챙겨 온 물을 한 잔 마셨다. 15분을 더 걸어 푸흐비에흐 성당을 드디어 만났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리옹은 평지에 낮은 건물들이 오목조목하게 들어선 꽤 넓은 도시였다. 마천루의 휘황찬란한 번쩍임 없는 단정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도시를 바라보며 그동안 여행에서 경직되어 있던 내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름 긴장해 왔고,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리옹의 분위기에 안도했다.
그렇다고 리옹의 모든 것이 조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리옹에 도착한 날 저녁에는 첫 번째 부숑에 가서 코스요리를 먹을 계획을 했는데, 혼자 여행을 와서 오후 7시 이후에 스스로 외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밤(?)의 외출이 꽤 긴장됐다. 게다가 프랑스어로 된 코스요리 메뉴를 잘 보고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컸다. 한국에서도 코스요리를 즐기지 않는데, 프랑스에 와서 코스요리를 먹다니… 게다가 내가 예약해 둔 부숑의 메뉴판을 미리 번역기를 돌렸을 때 ‘노란 가금류 주스’라든지 ‘펄트리 간 케이크’라는 단어를 보았다… 시간은 벌써 오후 6시 30분… 예약한 시간은 오후 7시.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저질러 보자.
레몬시럽을 섞은 물 한 잔과 고기와 계란에 포도주 소스를 넣어 익힌 전체 요리, 메인요리로는 순대 같이 생긴 소시지에 구운 야채를 곁들였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메뉴판에 실제로 이렇게 적혀 있다)는 레몬이 들어간 마들렌을 주문했다. 그제야 부숑의 내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식탁보가 놓여있었고, 벽에는 이 가게의 오래됨의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받은 상장과 광고판, 셰프의 칼이 전시되어 짧지 않은 이 가게의 이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식사는 레몬과 포도주 베이스의 소스를 만든 음식을 골랐기 때문에 신맛이 강한 편이었는데, 문제는 음식이 아니었다.
식당의 상황은 이랬다. 내 오른쪽에 앉았던 미국인 부부는 메인요리 하나만을 주문하여 벌써 먹어 치운뒤에 자리를 떴고 (왜 미국인이라고 확신했냐면… 그들의 미국식 발음과 억양 때문이었다) 그 자리의 식기를 치우기도 전에, 입구 쪽에 12명 정도의 청년들(체크무늬 셔츠에 면바지 혹은 청바지 등으로 간편하게 입은 청년들이었다)이 들어와 차례대로 주문을 했다. 곧이어 조금 더 안쪽 자리로 8명 정도의 가족들이 와서 누군가의 귀가를 축하하는 듯했다. (가족 중 1명이 굉장히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들어와 한 명 한 명과 모두 포옹을 나눴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족들의 음식도 주문이 들어간 상황. 그 와중에 나는 메인요리를 다 먹고 디저트인 마들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눈을 맞춰도 내 자리에 디저트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이었다.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르면 안 된다지만 어떡하겠는가. 나는 내 자리 담당 서버를 보며 손을 들어 ‘씰부플레(s'il vous plaît, 영어로는 please와 흡사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그는 내 자리를 보더니 ‘디저트 줄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그 서버가 내 자리로 와 접시 바깥쪽에 놓아둔 수저를 접시 위로 올리면서, ‘이렇게 둬야 해’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 그 표시로 의사소통(?)하는 건가.
곧바로 나온 마들렌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그냥 이제 집에 가고 싶고, 한국 가서 김치찌개 먹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지금까지 잘하고 있는 듯했는데… (당연하겠지만) 부족했다. 내 주변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무언가를 끝없이 말하며 밥을 먹는 중이었다. 왜 그들에게 이런 방식의 식사예절이란 것이 생겼는지, 나에게는 다른 방식의 식사예절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 식사예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은 지켜나가고 어떤 것은 변해나가는지, 또 왜 그러할 필요가 있는지 이러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며 서러움에서 이성을 찾아가던 중, 내 눈에 무언가 띄었다.
이 식당의 웨이터는 총 2명이었는데, 검은색 조끼를 입고 명찰을 단 여성이 정직원이거나 혹은 점장 같이 가게 내의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고, 흰색 셔츠를 입고 앞치마를 한 남성은 그 여성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확인받는 모습을 보니 아르바이트이거나 낮은 직급의 직원 같았다. 내 테이블 담당은 그 남성이었는데 서빙하며 식당 내를 걷던 그 사람의 운동화 뒷굽이 떨어져 덜그럭 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오래되고 조용한 이 도시에 살면서 일하는 저 서버가 내 친구 같아 보였을까. 나는 계산서를 요청한 뒤 현금으로 가격을 지불하고 팁을 꽂아 둔 뒤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오후 8시 30분, 깜깜한 밤길에 조명이 비쳐 나름 아름다웠던 론강가를 걸었다. 오해일 수도 있고, 애매한 이해일수도 있는 알 수 없는 저녁식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