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장소가 안시
‘꿈과 환상’에 부딪치는 일
안시(Annecy) 올드타운 사진을 보고 반했던 적이 있다. 17살, 고등학교 컴퓨터 시간이었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후작업 하는 수업이었던 것 같다. 나는 햇빛이 내리쬐는 알록달록한 건물이 있는 사진을 골랐는데, 톤 다운된 파스텔톤의 건물 외벽과 나무로 된 창이 있는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거기가 프랑스의 안시였다. 리옹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안시가 있었고, 당일치기로 버스를 예매해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꿈은 꿈일 때 비로소 꿈이라고 할 수 있다 했나. 그게 현실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안시 방문길은 시작부터 뒤죽박죽이었다.
유럽여행에서 가장 그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은 오미오(omio)라는 교통수단예매 앱이었다. 이 어플로 비행기, 버스, 기차를 모두 예매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안시로의 당일치기여행에도 이 어플을 통해 버스를 예매했다. 숙소에서 버스터미널까지 트램으로 15분, 걸어서도 15분 정도 거리였는데, 트램 시간이 애매해 걸어서 역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휴, 이런 생각부터 문제였다. 여기는 부산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다. 난생처음 와보는 프랑스, 그것도 리옹이라는 곳의 버스터미널을 가는데, 걷기를 선택하다니! 터미널 입구가 어딘지 어떻게 알겠나! 메트로터미널과 버스터미널이 바로 옆에 붙었는지 어떻게 알았겠나! 이 나라의 버스터미널 시스템을 어떻게 알았겠냐고! 내가 타야 할 버스-블라블라카(BlarBlarCar)를 제대로 찾았을 때는 버스 출발시간 5분 전이었다!
다행히 창구에서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직원을 만나 나는 무사히 버스에 탈 수 있었다. 그 직원은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은 뒤 자신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주변의 동료들에게 나를, 이 처음 보는 한국 애를, 소개했다. 버스에 올라타는데 그 직원들이 ‘너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뒀다’며 버스 바로 뒤편 좌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고맙다고 일단 말은 하고 그곳을 지나쳐 뒷좌석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내 뒤를 뒤따라 들어온 (아마 나처럼 버스시간에 좀 늦은 사람인 것 같았다) 백인 남자애에게는 나에게 대한 것 같은 과잉친절은 베풀지 않았다.
버스는 알프스산맥을 향해 달렸다. 안시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알프스 산맥 근처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안시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스위스 제네바, 동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몽블랑이 나왔고 그 너머엔 이탈리아가 있었다. 부산은 바다 근처에 형성되어 있어 육지보다는 바다를 마주하는 일이 더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멀리 보이는 빙하산인지 설산인지 모른 하얀 산맥이 낯설고 이상했다. 내가 그곳을 낯설게 느끼는 만큼, 그곳도 나를 낯설게 느꼈다. 아무래도 이 작은 마을에서 나는 이질적인 존재임이 확실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나를 그들 중의 하나(one of them)인 것처럼 그냥 두었지만, (그것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아이와 소녀, 소년의 호기심은 어른들의 그것보다 컸다.
나는 방금의 그 버스 지각 사태(!)를 겪고는 진이 빠져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데, 버스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갈색곱슬머리의 백인소년이었다. 나는 그 애의 뒤통수를 한참 쳐다봤다. 아마 내가 쳐다보는지 몰랐던 것인지 그 아이가 한 번 더 고개를 돌리려고 하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몸을 틀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미 몸도 옆으로 틀어서 앉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아. 제발. 편히 가면 안 될까.
안시의 날씨는 흐렸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열려있던 시장이 곧 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배가 고팠다. 시장 곁의 한 빵집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줄 서서 빵 사는 집은 맛집이지. 나도 줄을 섰다. 메뉴는 다 프랑스어였고, 카드결제도 안된다고 적혀있었다. 가게 안쪽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계산대에는 한 소녀가 서있었다. 내 앞의 손님들은 자주 이곳에서 빵을 사는 모양인지, 바게트와 깜파뉴 큰 덩어리를 하나씩 사갔고, 그들은 짧은 인사도 주고받았다. 드디어 내 차례. 나는 나에게도 짧은 인사를 기대했다. 그 잠깐 사이에 평생 이 마을에 살아온 사람 같은 마음이 나에게 생긴 거다. 하지만 그건 내 마음속의 일일 뿐. 계산대에 서 있던 소녀는 딴청을 피웠다. 아침부터 쌓여 온 이상한 일들은 빵을 한 입 먹으면 잊힐 거야. 이상하게 긍정적인 마음을 먹은 나는 소녀가 준비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고, 짧은 실력이지만 프랑스어로 설탕이 뿌려진 브리오슈와 아몬드 크루아상을 달라고 말했다. 브리오슈는 1.5유로, 아몬드 크루아상은 2.5유로였고, 딱 값에 맞게, 거스름돈도 필요 없이, 4유로를 내밀었다. 그제야 소녀가 환하게 웃었다. 멕씨, 본주흐네(Merci, Bonne journée). 나는 짧은 인사도 건넸다. 본주흐네. 소녀도 응답했다. 가게를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아몬드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하고 달콤했다.
이대로 끝났다 싶었다면 오산이다. 크루아상을 신나게 먹던 내 앞을 여자 어린이와 그 엄마가 손을 잡고 지나다가 잠깐 발걸음을 멈췄는데, 그 순간 나와 눈을 마주친 아이가 말했다.
“Elle est Coréenne.(한국인이야)”’
엄마는 아이를 한 번 보고 나를 보더니 아이에게 말했다.
“C’est mal opinion.(그건 나쁜 의견이야)”
그러고는 작게 ‘Pardon’’이라 말하며 지나갔다.
아. 된장찌개 먹고 싶다. 감자, 호박, 대파, 버섯, 두부 팍팍 썰어 넣고, 고춧가루 한 숟가락 넣은 된장찌개 먹고 싶다. 에너지를 가득 채워서 그들에게 먼저 활짝 웃으며 말을 걸고 싶다. 잘하든 못하든 프랑스어를 써보고, 영어나 한국어로나 손짓 발짓을 섞어서 그들과 웃으면서 다가가고 싶다. 꿈과 환상을 마주하고, 그 현실을 알아버리고 다시 또 마주하고 부딪치고 깨지려면 내가 무엇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 잘 알아야 하는구나.
다시 돌아온 버스터미널. 리옹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아무런 안내 없이 30분 지연됐다. 알고 보니 버스 기사가 그 옆에서 졸고 있었던 것. 이제는 그냥 웃음이 났다.
유럽에서의 긴 여행이 끝나간다. 귀국 4일 전.
추신 : 글을 쓰다 보니 안시에서의 인종차별 경험담이 부각된 것 같아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여행 내내 작든 크든 그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박물관에서, 글래스고의 어떤 식당에서, 또 에딘버러의 어떤 식당에서, 리옹의 어떤 스타벅스 매장에서 등등 다양하게도요. 물론 친절한 사람들도 많았고,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느 곳이나 이런저런 것들이 뒤섞여 나타나기 마련인 듯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