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다시 집

by 오늘영

에필로그


밤인지 낮인지 모를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과 정반대의 시간을 쓰는 나라들을 여행하고,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차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는 소리다. 유럽(영국 기준)에서 오후 7시가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3시. 유럽시간으로 오전 1시는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9시가 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지난 한 달여간 나의 신체가 왕성하게 활동한 ‘오후 7시’가 한국이라는 공간에서는 모두가 잠든 ‘오전 3시’이고, 한국에서 모두가 출근하고 바삐 움직이던 ‘오전 9시’에 혼자 ‘오전 1시’인 나의 신체는 깊은 잠에 든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2시(내 신체시간으로는 오후 6시), 깜깜한 창밖으로 자동차 하나 없는 도로를 내려다보는데, 이성적으로 성공과 실패의 퍼센티지를 따지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내 논리는 새벽임에도 왜 이리 질서 정연한가. 한 사회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객관적인 시간에 적응하지 못한 내 신체의 시간 덕분에 내가 구사하는 말과 글과 생각이 밤의 언어임에도 도착지가 명확하다.


오후 2시-내 신체 시간 오전 6시-에 일어나는데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 같은 피곤함이 느껴질 때의 기분도 별로다. 아침나절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도 새벽에 일어난 것과 같은 피곤함이 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표준시란 무엇이냐, 그래서 나의 개인적인 개성(신체 시간)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시간이랑 상대적인 것이다,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 아니고 동시성을 갖고 있다… 등등의 사색을 빙자한 생각의 나락으로 빠질 법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사색의 길을 걷는 대신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얻고자 하는 목표에 집중한다.


초겨울 아침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고, 노을이 펼치는 매일의 다른 색을 보고 싶다. 오후 3시에 일어나고 새벽 5시에 잠드는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다. 계속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없다. 나는 한식을 사랑하고(된장찌개 만세), 한국어를 쓰며, 한국에서 살기로 결정했으므로 이 사회의 객관적인 시간에 적응해야 한다. 또, 신체는 태양의 영향을 받고, 정신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내 신체 시계와 내가 사는 사회의 객관적인 시계를 맞춰야 했다.


지금까지 시도해 본 방법은 총 3가지.

첫째, 나는 술에 취하면 잠드는 좋은 버릇이 있으므로 밤 12시까지 술을 진탕 먹어보았다. 하지만 잠에 들기는커녕 술만 깨버리고 오전 6시나 돼서야 잠에 들었다. 실패.

둘째, 마그네슘이 들어 몸을 이완시켜 주는 딥슬립 영양제를 오전 1시경 먹고 잠에 들었다. 이대로 성공인가 싶었지만, 오전 3시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대로 눈을 뜬 채 아침을 맞이했다.

실패.

셋째, 잠에 들어야 하는 시간에 잠에 들지 못하면 명상을 한다. 40-50분 정도의 간격으로, 다리가 저리면 잠깐 눈을 뜨고 쉬어주면서 명상을 이어가는 것. 그동안 갈고닦아온(?) 명상 실력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인지 관건이다. 하지만 왕성한 내 두뇌가 생각을 멈추지 않고, 참으로(!) 출중한 실행력까지 겸비한 덕분에(!) 영어회화 수업까지 오전 4시에 잡아버렸으니.

또 실패.


모두가 잠든 밤, 왕성한 신체 활동을 혼자 하고 있는 나는 불편함이 가득하다. ‘이건 해가 떠있는 시간에 활동해야 한다’는 나의 편견에 기인한 불편함인가. 하지만 식물은 태양으로 인해 광합성을 하고 인간의 신체도 햇빛을 받아야 면역력에 필요한 비타민을 생성해 내잖아. 일조량은 우울감에 영향을 미치는 멜라토닌 분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데.

그러면 지금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제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평안을 찾기 위해서인가. 흔들거리는 오뚝이가 다시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중인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불편함을 불쾌하게만 느끼지 말고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하는 노력이라고 가상히 여겨줘야겠지.


낯선 곳으로 이동하기-적응하기-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하던 삶에서 영구히 정착하게 된 호모 사피엔스의 농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화이므로 (유럽여행동안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다. 아직 책 읽기는 진행 중이지만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이 사피엔스종에게는 번성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개개의 사피엔스에게는 더 많은 노동과 낮은 질의 식사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변화는 많은 노력과 희생(?)을 수반하게 될 것이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테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스스로가 되기를 바라며.


인생 처음 혼자 떠났던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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