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장소가 바르셀로나
어떤 작품이 주는 감각
어렸을 때 서양회화에 관련된 책을 종종 읽었었다. <웬디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이라든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들을 말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림이 많아서 그냥 좋았을 수 있고, 그림이라는 단면적인 한 공간에 함축적인 이야기가 모조리 담겨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대단한 미술 애호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유명한 회화들이 낯설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도시마다 꼭 들른 곳은 미술관이다. 레이캬비크 현대미술관, 런던 내셔널갤러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박물관, 르누아르의 정원, 리옹의 시립미술관까지.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간듯하다. 미술관 가는 거 좋아했구나?
여러 미술관을 돌며 본 수백 점의 작품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그림은 파리의 오르세에서 보았다. 이미 고흐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나도 줄을 서야 할지 고민하다가 루이 장모(Louis Janmot)라는 작가의 특별전을 우선 보고 나왔다. 그의 전시공간은 매우 한산했고 나는 장모가 매우 섬세하고 백지장 같은 사람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고 나왔는데도 고흐전 앞의 더 늘어난 줄을 보고는 고흐에 흥미를 잃었고 슬렁슬렁 오르세를 걸어 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다 나갈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꼭 가봐야 한다고 했던 오랑주리(모네의 수련이 있는 그곳)도 못 갔던 터라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음을 밝힌다)
데생하는 사람들의 스케치북을 보던 나는, 밀레(millet)의 양 떼목장, 밝은 달빛(Parc à moutons, clair de lune) 앞에서 멈췄다. 이 그림은 손바닥 3개 정도의 작은 크기였는데, 나는 그 작은 화면에 얼굴을 박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마침 그 공간에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림에 마음을 뺏긴다는 말은 이런 건가.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내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컴퓨터화면이나 프린트된 지면에서 느낄 수 없었던 그림의 질감이 느껴졌다. 하나하나 작은 것도 눈으로 밝혀내 보고 싶었다. 이 부분에 물감을 얼마나 묻혔는지, 그것을 그대로 뒀는지, 풀어서 펼쳤는지, 흰색 물감을 위에 덧발랐는지가 눈에 서서히 들어왔다. 사람들도 몇 명이 지나갔다. 이렇게까지 하는 스스로가 민망해져서 걸어서 지나치려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그랬을까. 그렇게 3번쯤 하고 나서야 나는 온전히 오르세미술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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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온전하게, 압도되어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게 한 것은 사그라다파밀리아(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였다.
파리를 지나 안시를 거쳐 도착한 마지막 여행지인 바르셀로나는 11월 초임에도 반팔티셔츠를 입을 정도로 더웠다. 바르셀로나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꿀대구를 먹는 것과 가우디 투어를 하는 것이었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입장 날짜와 가우디 투어 날짜를 보며 예약하다가 문득 내 직관이 번뜩이는 순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오르세에서 밀레의 그림을 봤을 때 느낌과 같은 것을 한 번 더 느껴 볼 수 있을까. 한 작품에 대해 맥락이나 역사적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보다 내 직관으로 먼저 느껴볼 수 있을까. 하나의 선, 모형의 의미, 사용된 재료, 당시의 역사적 배경 같은 것 말고 그 자체로, 그 작품 자체로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아무런 설명 없이 사그라다파밀리아를 먼저 보고, 그다음 날 가우디 투어를 통해 한번 더 가는 식으로 계획을 세웠다.
어떤 작품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찾은 답은, 그렇다 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은 정말 말 그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루브르에서도 모나리자를 보다가 그 우글거리는 사람들에 놀라 황급히 그 공간을 빠져나왔었고, 또 꽤나 좋아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았지만 역시나 몰려있는 사람들에 당황하며 빠르게 지나간 터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그렇게 스치듯 들렀다 나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나는 어린 시절 매주 일요일 예불을 드리러 절에 갔고(엥? 무슨 상관?) 부모님은 절에서 결혼하신 유서 깊은(... 뭐래) 불교집안인 데다가, 지나온 여행지마다의 유명한 성당이란 성당은 다 가보았기에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나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중앙 입구 외벽에는 예수의 탄생에 사람들의 경외와 찬양을 있는 그대로 조각해 넣은 듯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 끝에 아기 예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입구 문에도 세밀한 곡선을 가진 꽃 장식이 뒤덮여 있었고, 성경의 어떤 이야기를 가진 장식들이 이곳저곳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저 ‘우와’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제 성당 안쪽만 ‘구경’하고 재빨리 이 숨 막히는 인파를 지나쳐가자고 생각하며, 안쪽으로 들어섰는데. 그 공간이 나를 압도할 줄이야.
그 높은 건축물은 하늘 높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었고, 그를 지탱하는 백색의 기둥이 기세등등했다. 앞쪽에는 오르간이 놓여있었고 그 앞으로 앉을 수 있는 의자가 20열쯤 놓여있었으며, 그 위로 아주 조그맣게, 하늘을 찌를듯한 천장과 대비되는 낮은 위치에, 예수그리스도의 조각상이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전 세계 나라의 온갖 언어가 웅웅거렸다. 고개 숙이고 내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눈을 감았다. 오르간소리가 어느 순간 울렸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한 것 같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누가 직접 연주하는 것인지 보려고 내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꼭 쥔 두 손, 앉은 자세, 잠깐 들었다 내린 고개, 바닥에 꼭 붙인 발 두 개, 마찬가지로 꼭 붙인 무릎 두 개. 그런 것만 명확했고 다른 건 모두 불확실했다. 모르겠다. 이미 나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져서 고개 숙이고 있었다.
뒤쪽 문을 나서자 그곳은 수난의 파사드가 새겨진 외벽이라고 했다. 그 아래 화단에 로즈마리 고목에서는 꽃이 만개했다. 나는 부모님이 지내는 집 화단에 심긴 고목의 로즈마리에서 꽃이 단 한 번 피어난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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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한국인과 결혼하여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가이드 에두를 따라 가우디 투어에 나섰다. 카페에서 만나 꼬르따도(Cortado. 스페인식 카페라떼라 해야 하나. 진했다)부터 한 잔 마시고, 용의 비늘같이 생긴 까사 바트요, 사막같이 생겨서 아주 마음에 드는 까사 밀라, 츄레리아 트레볼에서 갓 구운 추러스도 먹고, 구엘공원에서 ‘가우디는 미쳤다’를 수백 번 외치다가 식당에 앉아 빤꼰또마떼(Pan con tomate. 스페인 카탈루냐의 음식으로 특제 토마토소스를 빵에 발라먹는다)를 한 입 물고는 진정했다.
미치려면 가우디처럼 확실하게 미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한 명의 예술가 곁에서 함께 일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가우디가 죽은 뒤에도 이 프로젝트를 맡아서 이끌어 간 사람, 가우디의 의견을 전체 팀원에게 공유해 준 사람, 자재를 구해오는 사람, 중장비를 움직여 실제로 공사를 진행하는 사람, 실제로 이 건물을 짓고 있는 사람, 설계도면을 점검한 사람, 건축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 바르셀로나 시와 일정을 조율하는 사람… 그 모든 사람. 성당 지하에 가우디의 말로 그 모든 사람들을 다시 생각한다.
“항상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작품의 정신이며, 그 생명은 다음 세대에 달려있습니다.
(What must be always preserved is the spirit of the work; its life will depend on the generations that transmit this spirit and bring it to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