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도영 May 12. 2019

지금 보다 더 좋아진 내가, 당신들을

여행 소회 (14) - 일본 도쿄 아사쿠사



아침 7시쯤 됐을까. 비가 천천히 내렸다. 바쁘게 내리는 비는 귓가를 울려 정신을 쏙 빼놓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날은 분주하게 옷과 가방을 적시는 대신, 여유가 있었다. 한 손엔 우산을, 한 손엔 카메라를 들어 노는 손이 없는 나도 이 날 비를 사근사근하게 대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상점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도쿄 3일째, 이틀간 사람 구경을 실컷 한 덕인가 신사 근처의 고요함이 너무 좋아 오히려 내 속이 시끄러웠다. 예뻐서, 마음에 들어서, 조용해서 참 좋다며 내 안의 내 것들이 신이나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신사 관리인은 비가 오는데도, 없는 먼지까지 털어내며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본당 앞 연못의 잉어들은 조식이 아직인지 내가 가까이 가자 첨벙첨벙 소란을 피웠다. 크기도 크고, 모두 건강하게 윤기가 흘렀다. 줄 수도 줄 것도 없는데 괜스레 내 덕에 더 깊은 허기를 느꼈을 것 같아 조금 미안했지만, 나는 잉어를 놀리듯 장난스럽게 조금 더 연못 근처에 머물렀다.



본당 안은 신사라기보다 사찰 같았다. 신이 한 분만 계시기엔 세상이 참 복잡하다 생각하는 나는 100엔짜리 동전 하나를 생판 초면의 신에게 대뜸 던졌다. 메이지신궁을 여정에서 제외한 것과는 다르게 이 곳은 우리 부모들에게 직접적으로 죄를 지은 곳이 아닌지라 양 손바닥을 맞추어 기도하는 마음이 그래도 편했다.



가족과 나의 평안을 빌고 돌아서자 물기를 머금은 4월의 이파리들이 시야에 가득 실렸다. 푸릇한 경내 안은 차분하고 일관되게 예의가 좋았다. 하나하나 눈에 담기에 거스르는 것 없이 편안했다. 고백하고 싶은 마음에 주저하며 상대의 주변을 맴돌듯 나는 걸음 하나하나 신중하게 선택하며 그 온전함을 누렸다.




천천히 걸어도 여행자에겐 항상 갈 때가 오니까. 좋은 것들을 뒤로하자 낯선 아쉬움이 밀려왔다. 도쿄는 어느 곳이든 다음 날을 기약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이 곳에는 나를 조금 두고 가고 싶었다. 뒤를 돌아 한 번 더 속 깊은 곳에 장면을 담았다. 풀 내음이 섞인 비 냄새, 공기 중에 가냘프게 떠돌던 향의 온기, 한껏 찌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한 없이 인자했던 궂은 날씨까지...


언제쯤일까, 지금 보다 더 좋아진 내가 당신들을 만나는 건.



이전 13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름다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