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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Apr 21. 2019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름다웠다

여행 소회 (13) - 헝가리 부다페스트


우리는 강 한가운데였다. 어스름한 8월의 저녁. 강바람이 강해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휘날렸지만, 상관없었다. 신선한 포도로 담근 와인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홀딱 뒤집어쓰고도 기분이 좋아서 입을 할짝거리듯, 눈 앞에 펼쳐진 짙은 공기에 술이 약한 사람 마냥 깊이 취했다.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환한 드레스를 입은 키가 큰 천사가 어깨가 뻐근한 듯 양 날개를 쭉 펴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녀가 건드리는 공기 입자가 반짝거리는 금으로 변해 후드득 떨어지자 교각 사이에 숨어있던 님프들이 서로 경쟁하며 주머니와 바구니에 가득 담고는 킥킥댔다. 어떤 아이는 맛을 보듯 깨물어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머리 장식을 만들어 거울을 보며 자기에게 푹 빠진 듯했다.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은 이런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아름다웠다. 신들이 사는 올림푸스산이나 천국의 모습을 주로 아침이나 태양이 환하게 내리쬐는 낮 정도로 생각하지만, 잠시 태양이 쉬고 달이 어둠을 밝히는 매력적인 몇 시간은 그곳에도 있을게 분명했다. 넥타르에 취한 신들이 보시기에도 부다의 밤은 부족함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름다웠다. 짧게 머무는 시간이 야속해, 배에서 내리기 싫었다.



국회의사당은 그중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났다. 상상한 것보다 큰 에너지가 흘렀다. 영롱한 호박을 녹여 벽에 바른 듯 화려함을 뽐내는 고딕 양식의 탑들은 신께 닿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듯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며 손을 하늘로 뻗어내고 있었다. 그 손짓에 간절함에서 비롯된 고통이 보이기보다는, 자신감과 자기애가 넘쳤다. 강했다. 어떤 전투에서도 지지 않을 장군이 얌전히 도시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정치를 하고 있는 인상도 풍겼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이곳은 언제든 다시 오겠구나 싶었다. 그 재회가 너무 늦지는 않길 바라며, 나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부두에 발을 딛는 것을 도와주는 부다의 청년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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