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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Apr 06. 2019

싱가폴이 볼 데가 있겠니?

여행 소회 (11) - 싱가포르 02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면 벌금 얼마래.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싱가폴 괴담. 한국에서도 나는 그런 행동에 조금 예민한 편이라 벌금 이야기 같은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이 나라가 얼마나 빈틈이 없을지 그런 게 궁금했다.



싱가폴의 가든스 바이더 베이는 그런 완벽함에서 비롯됐을까. 어딘가 이상할 정도로 모자람이 없었다. 하늘 아래 사람이 만든 인공물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내내 몸이 붕 떠올랐다.



플라워 돔에 들어서자 위에서 쏴 하고 내리꽂는 인공폭포가 만든 물방울에 뺨이 젖을 때, 바람은 자연의 그것처럼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입가가 위로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좋았고 예뻤고 완벽했다. 그곳은 그렇게 나에게 멋진 인사를 건넸다.



돔 안은 화려한 꽃과 짙고 강렬한 이파리들이 뿜어 내는 산소로 가득했다. 그래, 그들의 숨결이 나를 땅 위로 띄운 것이 분명하다. 몸과 마음이 동동 떠서 이 곳 저곳 나는 쉽게 뛰놀았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다. 싱가폴이 볼 데가 있겠니? 하고 걱정한 아빠도 떠올랐다. 사진을 잘 찍는 동생이 정말 좋아할 곳인데. 나는 심하게 외로워졌다. 근사한 레스토랑의 레몬 셔벗이 너무 완벽해서, 집에 가져갈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미안해요. 이 곳을 나가면 셔벗은 녹아버려요. 라는 대답을 들은 것처럼. 좋은 것들 앞에서 나는 시무룩했다.




싱가폴의 밤은 이르게 찾아왔다. 쫀득한 젤라또처럼 로맨틱한 슈퍼트리 쇼. 빛나는 나무들이 음악을 켰다.



거대한 슈퍼트리는 선율 위로 날아다닐 음표가 필요하자 감격해 넋을 놓고 구경하는 내 장기를 허락 없이 꺼내가 리듬을 태웠다. 나의 부속 중 하나가 스타카토로 튕기며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힐 때 나는 울고 싶었다.



혼자라서 슬펐다.


여행 중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한 마음에 화려한 도시의 밤을 탓했다. 비난할 번지를 맞게 찾았지만, 내가 싱가폴에게 허망하게 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날 밤 슈퍼트리는 이미 백기를 든 내 앞에서 쉬지 않고 춤을 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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