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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Jul 28. 2019

예술가의 영혼을 삼키러

여행 소회 (20) - 영국 런던 03



런더너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미술관과 박물관이었다. 우리는 하루에 많으면 두 곳, 적어도 한 곳의 뮤지엄과 갤러리에 문을 두드렸다. 가본 곳을 손으로 하나하나 꼽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랐다.



신고 간 워커로는 발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운동화를 사 신어 봤지만, 역시나 발은 퉁퉁 부어 비명을 질러댔다. 책 속에서만 보던 명화를 만난 내 손은 기도를 하듯 공손했고, 아름다운 것을 만나 얼굴은 또 심각한 모양새였다. 발은 비명을 지르다 결국 지쳐 기절한 것 같았지만, 나는 무심하게 계속해서 노동을 시켰다.



먹물이 저고리 끝에 매달린 가벼운 춤사위를 표현하는 데 가장 알맞은 도구이듯, 붉은 망토의 부드러운 촉감과 보석의 날 선 냉기를 담아낸 유화에 나는 빨려 들어가듯 집중했다.



거대한 명마의 초상 앞에서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탈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의 마음은 동서고금 다들 것이 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터졌다. 계속해서 아는 그림, 모르지만 훌륭한 그림이 예고 없이 뺨을 때렸다. 너무 자주 얻어맞아서 코끼리 코를 하고 열한 바퀴나 돈 듯 멀미가 났다. 이런 벌칙이라면 평생 받아도 좋았다.



장르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창조자의 건강한 철학이 담긴 예술을 편식 없이 좋아하는 내게 런던의 수많은 갤러리는 고급 재료로만 요리한 미쉐린의 그것이었다. 나는 급하게 이것저것 먹어서 체기가 올라올 것 같으면 갤러리 곳곳의 의자에 앉아 잠시 소화를 시키고는, 곧 다시 다른 화가의 영혼을 삼키려 눈을 번뜩이며 다른 전시실로 전진했다.



다음 날은 또 다른 갤러리를 공략했다. 1000년 전 것이든 10년 전 것이든 과거의 누군가가 저지른 과업을 접시에 담아 온 몸에 쏟아 넣는 그 작업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고 느낄 줄 아는 나의 멋진 새 시대를 위한 합법적인 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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