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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Jul 28. 2019

건강해진 빅벤은 그때 다시 만나서

여행 소회 (21) - 영국 런던 04



찾아간 펍의 이름은 레드라이언. 사자는 아름답지만 용맹하고, 고독하지만 따르는 무리가 있다. 이 술집엔 그 이름이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다른 이름은 거절하는 편이 좋았다. 때깔 좋게 윤기가 흐르는 붉은 목재로 만들어진 키가 큰 찬장엔 술병이 가득했고, 고풍스러운 조명이 온기를 더했다.



과거 처칠의 단골 펍으로 유명한 이 술집은 평일 초저녁에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빈자리가 하나 운 좋게 있어, 속으로는 신이나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사뭇 점잖게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정독했다.



고리타분하다고 면박을 들을지라도, 나는 기네스를 주문했고 식사로는 피시 앤 칩스와 미트파이가 당첨됐다. 주문서만 보면 한국에서 날아온 젊은 두 여자가 주문한 것인지, 영국 총리의 최근 행보에 대해 투덜거리는 나이 지긋한 아일랜드 출신의 어르신이 주문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그런 메뉴였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나는 이 도시를 꽤 맛있게 즐기고 먹었다. 이 날도 성공적이었다. 내 팔뚝보다 두꺼운 대구는 갓 튀겨져 촉촉한 수증기를 내뿜었고, 미트파이에선 진득한 데미그라스 소스가 터져 나왔다. 차가운 흑맥주는 구수했으며, 거품은 크림처럼 달았다.



워낙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지체 없이 밖으로 나왔다. 빅벤은 공사 중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런던을 상징하는 이 시계탑의 길고 긴 역사 중, 미래를 위한 준비기간에 방문한 것이 오히려 더 행운처럼 느껴졌다. 나는 분명 이 도시를 다시 찾을 테고, 건강해진 모습의 빅벤은 그때 다시 만나면 될 일이다. 여유가 없어 그를 찾지 못하는 쪽은 나지, 몇 년 뒤면 빅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날 기다릴 것이다.



강 건너 지는 햇살을 받아 런던아이가 황금빛으로 부드럽게 물들고 있었다. 반갑다는 환영인사가 아름다워 심장이 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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