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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Aug 04. 2019

고마워, 친구들

여행 소회 (23) - 영국 런던 06



수술 중인 빅벤의 어깨너머로 밤이 찾아왔다. 해가 짧아 쉽게 검푸른 11월. 건물벽에 아롱아롱 빛방울이 열렸다.



미리 예약한 런던아이 탑승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템즈강을 느긋하게 건넌 후에도 강 주변을 서성였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봄바람이 살랑댈 때 안기는 설렘이 귓가를 간질댔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잰걸음질을 했다.



그는 런던의 가을바람도 멈춰 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멜로디를 탄 가사가 흐르는 강물처럼 스스로 미끄러져 가슴에 떨어졌다. 딸칵하고 잠가둔 문이 살짝 열렸다. 아이돌 앞에 선 소녀팬처럼 기꺼이 공연의 일부가 되었다.



사실 이 여행에서 몇 번의 버스커들과 마주쳤지만, 인상에 남는 아티스트는 없었다. 좋은 가수들의 노래만 골라 들어 비싸진 귀가 런던에서도 취향을 찾아 편식을 하나 보다 싶었는데, 템즈강의 그를 만나 고마웠다.



노래를 들으며 카메라로 그를 담고 있는데, 다른 청중이 그에게 다가가 동전을 던지자 그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나 이상으로 까탈스럽게 노래를 골라 듣는 동생도 질세라 동전을 가방에 넣었다. 가수는 감사인사 대신 멈추지 않고 노래를 계속했다. “힝, 나도 땡큐 듣고 싶은데.” 동생이 옆에서 아이처럼 칭얼댔다. 내가 이어 동전을 조심스레 던지고 재빨리 뒤로 물러서자 그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Thank you, guys.


그 짧은 인사는 단풍나무 잼 같았다. 붉고 짙은 단풍 같은 그 목소리를 입에 물면 가을 맛이 날 것 같았던 게 첫 번째 이유고, 그의 다정함이 어린 시절 엄마 몰래 한 스푼 하던 흑설탕처럼 달달해서가 두 번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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