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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Jul 28. 2019

온몸이 뜨거운 별의 샤워를 받아냈다

여행 소회 (22) - 영국 런던 05



어쩌면 비 내리는 날이 더 익숙할 런던의 11월. 햇살은 다행스럽게도 맑고 자애로웠다. 가을날에 마시는 얼음물 한 잔을 떠올릴 만한 새벽 공기가 허파에 스며들었다가 체온에 데워지자마자 다시 쉬이 빠져나갔다. 고딕 양식의 교회는 짙푸른 하늘을 콕콕 찍어 댔고, 그 덕에 하늘은 검푸르게 물들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공원은 조금씩 사람들로 채워졌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침 햇살 속으로 누군가 달려 나가는 해사한 얼굴의 아침이었다.




사실 우리는 답지 않게 길을 헤맸다. 어떤 작은 언덕 하나를 찾고 있었는데, 공원은 숲처럼 거대했고 휴대폰마저 가라는 방향이 계속 바뀌었다. 사방이 훤하게 뚫린 미로였다. 결국 정신을 차린 지도의 안내를 받기로 하고 무작정 따라간 후에야 애타게 찾던 언덕을 만날 수 있었다.



언덕? 처음 프림로즈 힐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갸우뚱했다. 공원 안에 있는 언덕이라니.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동생의 한 마디가 나를 움직였다.


천국에 있는 기분이래


천국이라니. 쉽게 할 수 있는 표현은 아니겠지 싶었다. 누구나 죽으면 안식을 바라고, 그 안식에 어떠한 고통도 없기를 기원한다. 주로 그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가 천국인데, 그래서 나는 천국 같다. 란 표현을 될 수 있으면 자제했다. 미래에 지금보다 아름답게 빛날 순간이 더 많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최상급의 표현인 천국을 빗대는 일을 꽤나 멀리했던 것이다.



프림로즈 힐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꽤 까다로운 능선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나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정상을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올라설 때마다, 나 스스로가 인정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프림로즈 힐은 내가 생각한 천국과 꽤나 닮아 있었다. 고요하게 울리는 바람과 땅의 진중한 온기가 이 언덕에서 만나 우아하게 왈츠를 췄다.



정상에 올라 나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털썩 앉았다. 온몸이 뜨거운 별의 샤워를 받아냈다. 에너지를 낚아챌 힘이 내게 있다면, 이 날은 만선이었다. 화사한 에너지들이 그물에 가득 담겨 꼬리를 철썩댔다.



강하고 아름다운 태양, 이 거대한 별 하나가 우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사랑하고 있구나. 나는 무책임하게도 너무 거대한 상상을 해버리곤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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