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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Mar 17. 2019

어머니, 정식 하나요

여행 소회 (3) - 대한민국 제주 03

시장은 좋다. 무엇을 팔든 시장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 나는 상인들이 장을 여는 시간에 맞춰 부지런을 떨었다. 허기짐에 우선 시장 사람들이 이용하는 노점 식당에 호기롭게 앉았다. 외지인이 배낭 하나 메고 턱 하니 앉으니 주변 아저씨들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머니 정식 하나요.


붉게 칠갑을 한 옥돔. 엄마가 만들지 않은 다른 이의 생선조림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섬답게 생선은 많았고 과일은 저렴했다. 오메기떡을 하나 사서 배낭에 넣었다. 찰옥수수가 모락 하니 익어가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강원도 사람 티를 내듯, 감자떡이나 옥수수를 좋아했다. 옥수수는 육지에 가기 전에 다 식어버릴 테고, 뭐 집으로 보내줄 건 없을까 하다가 구좌 햇 당근이 눈에 띄었다. 한 봉도 엄청 큰데 사장님은 내게 두 봉이나 팔았다. 두 봉 14000원. 나중에 엄마는 당근을 비좁은 김치냉장고에 모두 넣느라 고생했다며 웃었다. 여하튼 나는 효도한 기분에 그렇게 돈을 쓰고 내내 뿌듯했다. 그리곤 회사와 부모님께 천혜향을 부쳤다. 이때 제주로 내려오면 다니는 회사로 귤을 부치는 의식 같은 게 시작됐다.



다른 날엔 오일장이 아닌 상설시장에 갔다. 항상 출근하시는 곳이라 그런가 상인들이 괜히 더 느긋해 사진에 담기 좋았다.

사람이라는 피사체를 촬영하기를 좋아하지만 나 역시 그렇듯 상대가 내게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니, 타인은 피해 찍는다. 그 점에서 시장 상인들은 좋다. 유쾌하게 받아주거나 스리슬쩍 찍기 편하게 시선을 옮기고 또는 피해 주신다.



강렬한 자연의 색, 그 지방의 맛, 일하는 사람들. 삼박자가 갖춰진 재래시장은 언제 어디든 그래서 옳다. 당신도 나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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