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도영 Mar 13. 2019

그 여행에서는 정갈한 맛이 났다

여행 소회 (5) - 일본 유후인

기껏해야 2층 정도 되어 보이는 키 낮은 단독 주택을 성급하게 지나치는 기차 안. 객실은 목재로 꾸며져 아늑하고 따뜻했으며 나무 냄새가 물씬 났다. 환승역에서 구매한 고등어회 스시는 비린내 하나 없이 고소해 입안에서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몇 년 전 엄마와 함께 한 일본 여행의 기억을 꺼낼 때면 으레 이렇게 기차 안에서 가을 해를 온전히 즐기던 나로 돌아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궁화보다 조금 느린 속도를 내던 기차는 반복적으로 덜컹거리며 일본 시골 풍경을 차창을 브라운관 삼아 반복적으로 재생했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서 시소를 타던 그 해의 9월은 나무의 푸르름을 즐기기에도 높은 가을 하늘을 감상하기에도 참 좋은 시기였다.



목적지인 작은 온천 마을에 도착하자 넉넉하게 마을을 품고 있는 산을 마주했다. 크진 않았지만 조용히 내보이는 산의 심성이 으레 볼 수 있는 동네 뒷산과는 격이 다른 깊이가 있었다. 여행 가방을 끌고 료칸으로 향하는 길목 길목마다 엄마는 반복해서 동네의 아기자기함과 깨끗함에 감탄하며 소풍을 나온 소녀처럼 재잘거렸다. 내가 보기에도 봄에 새로 뻗어나가는 어린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길을 낸 그 작은 마을은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인 일본 가정식을 빼닮았었다.

그래, 마을에서는 정갈한 맛이 났다.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작은 롤케이크 가게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더 걸어 들어간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일본 전통 숙박 시설인 료칸에 도착했다.



연하고 부드러운 나무에 제 살을 내어 지어진 전통 가옥은 모녀의 가을 여행에 화룡점정을 찍을 고승의 손길처럼 흠잡을 데가 없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만나 놀란 온천의 물은 낮게 깔리는 안개를 내뿜었고, 건강한 식재료에 유독 관심이 많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주인장의 저녁 식사는 방정맞게 좋아요 100개를 누른다고 해도 아깝지 않았다. 엄마는 이렇게 정성스럽고 완벽한 저녁식사는 처음이라며 참 고마워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여행 가이드로서 동행한 나에게 이 날 늦은 오후의 감사는 으레 그렇듯 엄마의 속에 생채기를 냈던 어린 날의 면죄부가 일부 되어 주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온천을 즐겼다.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아직까지도 생각나거나 혹은 스쳐 지나가기만 할 이야기라 기억할 수 없는 셀 수 없는 마음들이 다정하게 오고 갔다. 수선스럽지 않은 작은 마을의 그날 밤, 그 마을에서는, 그 여행에서는 정갈한 맛이 났다.
이전 04화 나는 아무 말 않고 그냥 웃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