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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웨이브 Oct 27. 2024

비 오는 날, 그 청년이 지키는 자리

일상영웅전 #4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어느 학교 앞, 4차선 무신호 횡단보도에선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곳에서 한 청년이 주황 우의를 입고 깃발을 부산하게 움직이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횡단보도 위를 알록달록 다양한 색의 우산을 쓴 학생들이 재잘대며 건넌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 청년은 출근 전 자기 시간을 일부러 내서 나오는 것 같았다. 맑은 날은 안 보이지만 비 오는 날 아침, 아이들이 등교할 때면 어김없이 그가 보였다. 


  바람이 불고 있어 새찬 비는 비스듬히 내리고 있었다. 양손에 깃발을 들고 있었기에 주황 우비 아래 청년의 머리와 얼굴은 물론 검은 바지와 신발까지 흠뻑 적시고 있었다. 


  우연히 그 청년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때마침 그의 호루라기 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청년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비로 그의 얼굴은 이미 젖어 있었지만 눈가를 적신 것은 새찬 비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하루종일 빗속에서 울먹이던 그 청년이 어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 탕비실에서 비 오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 이야기를 알아?" 

"주황 우비를 입은 청년 말이야." 

"회사 근처 학교 앞 횡단보도에는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주황 우비를 입은 청년이 울면서 교통정리를 하잖아." "그 모습을 보면 가끔 울컥한다니까."   


  알고 보니 몇 해 전, 비 오는 날 이른 아침 그 장소에서 청년은 교통사고로 10살 터울 여동생을 잃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비만 오면 그 청년은 주황 우비를 입고 호루라기를 불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도록 깃발을 부산하게 움직였다. 동생과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비만 오면 어김없이 청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비와 함께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조용히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힘겨운 기억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꾹 눌러 담은 채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다. 마치 영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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