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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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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정 Jun 13. 2016

말린 부케

이 날 이때처럼 행복하길 바라.



부케를 받았다.


신부가 친구에게 기쁜 표정을 하며 하얀 장갑을 끼고 건네듯 던지는 부케. 어릴 때부터 보며 그저 꽃을 가져간다는게 부러워 눈길을 떼지 못했었는데 친한 동생네 커플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아달란 요청을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지만 이거 6달 안에 시집을 안 가면 6년 뒤에 가게된다는 무시무시한 클리셰가 숨어있다며? 얼떨떨한 표정은  뒤로하고 부케를 받아온 날. 나는 바로 부케 말리기에 착수했다.



꽃 뜯어먹으려고 안달난 싹이.
부케는 해체해서 두 개씩 묶어 옷걸이에 매달아 거꾸로 말린다.


꽃다발을 말리기만 하면 거무죽죽해지는 터라 내심 걱정하며 말리기를 2주간. 어떤 이는 곰팡이도 피고 꽃잎도 많이 떨어진다던데 내가 받아온 흰 장미 부케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수하며 아주 잘 말라줬다.

아, 밤마다 점프하며 풀잎 몇 개를 떨구던 싹이의 희생양들은 제외하고...



여기서 필요없는 준비물은 고양이.
꽃잎이 예쁘게 보이도록 병에 둘러가며 정성스레 담아준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도저히 내 스타일의 유리병을 발견할 수 없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JAJU에서 득템한 식품보관병. 미끈하고 담백한 표면에 스테인레스 뚜껑도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저렴.



작업하는 중간중간 뛰어오르는 고양이를 잡아주셔야 합니다.
공단리본은 가위로 자르고 난 후 라이터로 마감질 필수.


장미 송이를 모두 담아주고 남은 공간에는 장미잎을 표면이 보이도록 넣어주었다. 심플한 마무리.

아, 그리고 장미가 싱싱할 땐 봉오리가 모여있고 꽃잎이 많이 피지 않은 것들이 예쁘더니 말리고나서는 꽃잎이 좀 펴서 울어있는 아이들이 되려 예쁘더라.



너는 왜 이리도 끊임없이 꽃을 탐하는 거니.


리본 위 병의 표면에는 이름과 결혼일자를 타이핑해 붙여주려한다. 신혼집 캐비넷을 예쁘게 장식할 선물이 되기 바라며... 훗날 아이가 이 병을 갖고놀다 깨는 일이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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