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담배 피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문둥병자를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쏜살같이 그 앞을 지나간다. 특히 아기를 안고 있으니 경멸하는 것도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화난 마음에 면죄부를 준다.
오늘 작은 고깃집 앞을 내다보며 걷는데 이미 삼겹살 굽는 냄새, 매운 김치 찌게 냄새 그리고 짭쪼롬 간이 쎈 음식들, 젓가락 달가락 소리가 들려왔다. 고단함도 그을림도 땀도 그 소리에 묻혀서 함께. 나는 술 담배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이런 식당의 풍경에 술잔과 담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예의 추측대로 식당 앞 나무에 기대어 몇몇 아저씨들은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점점 가까이 가자 그 중 한분이 급하게 담배를 숨기며 “야, 아기, 아기야” 동료들에게도 담배를 내리라 눈짓을 주었다. 본인은 이로울 것 없는 담배에라도 기대어 쉼을 누려 보지만 아기만은 지켜주려는 마음, 나는 그 순간을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따뜻함을 느꼈다.
장영희 교수님의 산문 중에 영문학과 학생들과 함께 ‘흡연에 대한 찬반 토론’을 하고 그 수업 풍경을 적어 놓은 글이 있다. 아무래도 그 날 토론은 객관적이고 탄탄한 근거를 제시하던 흡연 반대파가 우위를 선점하고 있었다. 마땅한 이유를 내놓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던 흡연 찬성파, 그때 한 학생이 영문학도 답게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로 분위기를 재미있게 반전시켰다. “생각해 보십시오. 로미오가 그때, 줄리엣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그때 담배 한 개피를 필 수 있었다면 그 괴로움을 내려 놓을 여유가 있었다면 로미오가 자살했을까요? 담배를 피며 상황을 돌아 보고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는 행위는 마땅히 제지 되어야 하지만 ‘담배를 통제할 수 없고 오히려 담배에 통제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던 마음은 버리고 싶었다. 비록 환각의 연기 속에 자신을 맡겼지만 아기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여전히 붙잡을 수 있었던 분, 그 분의 삶 전체를 단지 ‘흡연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기를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 분께는 어쨌든 마음을 열게 된다.
#브런치 북 #아들만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