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작은정원> 이마리오 감독 인터뷰
평균 나이 75세 언니들이 영화를 찍었다고? 다큐멘터리 <작은정원>은 강릉 명주동 이웃 모임 ‘작은 정원’ 언니들이 영화를 찍으며 성장하는 기록을 담은 작품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어렵사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니어들의 모습은 작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데요. 반대로 촬영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을 터. 오히려 연출을 맡은 이마리오 감독은 이 모든 게 명주동 언니들 덕분이라며 시니어들의 뜨거운 열정을 소개했습니다.
Q. <작은정원>은 시니어들의 영상 작업 도전기라 볼 수 있는데요. 첫 시작이 궁금합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작은 정원’은 명주동에서 짧게는 35년 길게는 70년간 거주해 온 시니어분들의 모임입니다. 2009년 강릉 명주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작은 정원 멤버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스마트폰 교육, 사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2019년에는 단편영화 제작 수업을, 2020년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되었죠.
Q. 예전 인터뷰를 보니 마음이 움직여야 작품을 시작한다 알고 있는데, 어떤 지점에 이끌렸나요?
음… 아무래도 명주동 언니들 간의 ‘관계’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한동네에서 같이 사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 어떤 가족보다도 친밀한 관계인데요. 단시간에는 만들 수 없는 이들의 끈끈한 연대가 마음을 움직였죠. 어쩌면 명주동 언니들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Q. 그런 이유에서 인지 극초반 ‘작은정원’ 회장인 춘희 언니부터 출연자 개개인의 성격과 특징이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수업 공간에서 서로의 특징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냥 명주동 할머니들, 시니어들이 아닌 각 개개인이 잘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장면을 삽입했습니다. 보다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성격, 성향들이 잘 보이도록 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매주 과제였던 스마트폰 영상 촬영 결과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삽입했던 것 같아요. 그 영상을 보면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거든요.
Q. 시니어의 삶 속에 영화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어요. 특히 초반 단편영화 <우리동네 우체부> 제작 과정이 나올 때는 다들 전문가다운 모습으로 집중하는 게 멋져 보이더라고요.
감사한 게 모두 뭔가를 배우려는 열정이 대단하셨어요. 물론, 자기 얼굴이 카메라에 나오는 걸 그리 반기지는 않았지만, 함께 새로운 것을 해본다는 것 자체의 의의를 두시고 열심히 하셨죠. 무전기를 들고 액션을 외치는 춘희 언니부터 카메라를 잡은 희자 언니,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는 혜숙 언니 등 현장에서 진심이었어요. 손자·손녀 나이의 친구들과 단순한 만남이 아닌 영상 작업을 함께 했다는 새로운 경험도 쌓이면서 더 좋아하신 것 같아요. 이 작업이 재미있었는지 춘희 언니가 계속 영화를 찍자고. (웃음)
Q. 춘희 언니는 딱 봐도 강하고,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리더인 것 같았어요. 근데 그런 분이 극중에서는 자신의 숨겨진 이야기를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가슴이 참 먹먹하더라고요.
그런 지점이 있어요. 멋지게 선글라스를 끼고 카메라 앞에 선 춘희 언니가 먼저 간 남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나 다른 언니들이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떤 엄마였냐고 물어봤을 때의 장면 등 감동적인 순간이 펼쳐지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고 살았던 시니어들의 마음이 카메라를 통해 해소되는 순간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들의 삶도 돌이켜 보는 계기로도 봐주길 바랍니다.
Q. 그러고 보면 참 명주동 언니들에게 카메라, 다큐 작업은 내외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작은정원>의 힘은 언니들의 긍정적 변화라고 봅니다.
맞아요. 이분들이 카메라로 찍어오는 결과물을 보면, 조금씩 성장하는 게 보였어요. 특히 기계를 잘 다루고 호기심도 많은 희자 언니는 카메라를 정말 잘 다루셔요. 알려준 적이 없는데, 카메라 두 대로 밭 일을 촬영하셨어요. 그 결과 다양한 앵글 확보가 되었죠. 정말 카메라 감독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로다운 면모였어요.
더불어 영화에도 나오지만 “예전과 다르게 사진을 찍다 보니 밝아지면서 내가 표현을 많이 하게 되더라”라는 말을 했어요. 카메라를 다루고 영화를 찍으면서 이제야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아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진정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를 알게 되신 거죠. 다른 언니들도 촬영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Q. 최근 시니어들의 취미, 여가 중 하나는 글쓰기입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면서 삶을 반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영상 작업도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담는 좋은 그릇이라고 봅니다.
비교하자면 글은 수정을 통해 정제된 이야기가 보여지지만, 영상은 가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죠. 어쩌면 <작은정원>이 꾸밈없는 자기 모습과 인생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을 수 있다는 좋은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극 중 숙련 언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찍거나, 옥자 언니처럼 구루프(헤어롤) 마는 걸 찍거나, 순남 언니처럼 수줍게 운동하는 걸 찍는 등 평소 자신이 좋아하고 애정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을 때의 사실감은 더 크게 다가오니까요.
Q. <작은정원>이 가진 의의 중 하나는 서울이 아닌 타지역의 고령화 사회, 그리고 시니어들의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를 줬다는 점인데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물론, 시니어들이 출연하고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는 하죠. 하지만 이 작품이 그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명주동에서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언니들의 소소한 일상을 영상으로 옮겼죠. 의의라고 한다면 로컬 영화로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윗세대의 이야기, 시니어들의 삶과 행복을 조금이나마 보여줬다는 것을 들고 싶어요. 더불어 자신이 시니어가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미리 그려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언니들의 영상 작업은 계속될 예정일지 궁금합니다.
아직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여건이 된다면 가능할 것 같아요. 언니들에게 이번 작업은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든 고마운 선물이죠. 6070세대로 각종 영화제, 시사회, 기자간담회, 인터뷰 등을 경험한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이 영화가 우리 언니들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행복한 순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부디 극장에 와서 우리 영화 많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언니들과 명주동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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