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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보람 Mar 13. 2023

울음이 녹기 시작했다

#1  등급 외 인간



  사장은 노련한 눈빛으로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사는 게 힘들었을 놈을 찾는다고 했다.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돼지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다리를 꿰고 있는 갈고리가 날카롭게 빛났다. 몸이 반으로 갈라진 돼지들은 머리와 내장이 제거된 상태였다. 생김새를 보고 찾겠다는 소리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사실 돼지는 어느 한 마리도 예외 없이 사는 게 힘든 동물이었다. 느리고 둔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무리 안에서 철저한 서열을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놈들은 아마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서열에서 밀려난 값싼 돼지일 것이었다. 희고 두툼한 피부에 진물이 흐르거나 뼈가 부러진 돼지들은 대부분 낮은 등급을 받았다. 패배의 상처가 일종의 낙인이 되는 셈이었다.


  두 번째 갈고리에 걸려 있는 돼지는 앞다리가 문제였다. 사료 배합을 잘못했는지 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었다. 방금 쪄낸 백설기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 있어 그 부위는 팔 수 없을 정도였다. 사장은 미간을 찡그리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만약 저 부위에 붉은 살코기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벌써 매입했을 눈치였다. 그는 문제가 되는 부위는 자잘하게 썰어 내어 근수를 보태는 데 쓰라고 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부위라도 여러 상품에 조금씩 분배하면 항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등급 외 돼지들이 나오자 사장은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자리에 설치된 화면으로 순서를 선택하고 재빨리 가격을 입력했다. 그가 매입한 돼지들은 한순간도 제대로 걸어 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 비좁은 우리 안에서 주저앉은 채 자라는 기분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사료를 먹으려면 온 힘을 다해 오물 속에 파묻힌 몸을 발버둥 쳐야 했을 테니까. 그러나 그 덕에 비정상적으로 살이 쪄서 뼈를 발라내고 주변 부위를 도려내도 고기양은 충분해 보였다. 그가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거래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낙찰받은 고기를 옮기기 위해 서둘러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냉동차에 매입한 고기를 모두 옮기고 시동을 걸었다. 사장은 그곳에서 만난 다른 업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언제 술이라도 한잔하세. 누군가 말하자 사장이 손으로 술잔을 들이키는 시늉을 해 보였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십 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예전에 딸이 목을 매고 죽은 이후로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나면 방에 틀어박힌 채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직원들 사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직접 그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사장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운전석 쪽으로 눈을 치켜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물건은 잘 챙겼는지 묻는 얼굴이었다. 손은 벌써 담배를 톡톡 털며 입으로 가져갈 준비를 했다.

  “확인하고 다 실었습니다.”

  사장은 별다른 대답 없이 바로 불을 붙였다. 창문으로 들어온 더운 열기가 담배 연기와 함께 뒤섞였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게 불편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와 일하는 것이 편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줄곧 담배만 피웠다. 업무에 관한 이야기 외에는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나에 대해 물었던 것도 회사에 처음 면접을 보러 왔던 날 뿐이었다.

  “아버지께서 정육점을 하셨다고?”

  “네. 어릴 때 십 년 정도 하셨습니다.”

  “대가리 없는 돼지 보기 싫다고 도망가지는 않겠군.”

  이 회사에 지원했을 때 나는 이미 여러 곳에서 퇴짜를 맞은 후였다. 백 킬로가 넘는 덩치에 빈칸이 많은 이력서를 들고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을 뽑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나 사장은 사람의 겉모습에는 별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내 속을 반으로 갈라 살펴보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 그가 다른 지원자들을 제치고 나를 선택한 것은 분명 내가 등급 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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