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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보람 Mar 14. 2023

울음이 녹기 시작했다

#2  햇볕에 몸을 말리는 뱀

  회사 근처에 도착하자 사장은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순댓국 두 그릇을 주문했다. 순댓국은 가장 빨리 나오는 메뉴였다. 음식이 나오자 그는 팔팔 끓는 국물을 휘휘 저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떠먹었다. 얼굴까지 올라오는 열기를 느끼며 음식을 입에 가져가려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낯선 번호였다.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사무적인 어조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영등포 구청입니다. 이구복 씨 아들 되십니까?”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보았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장이 고개를 반쯤 들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희 쪽에서 이구복 씨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소지한 신분증으로 가족을 찾아보니까 아드님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십 년 만에 듣는 소식이었다. 사장은 창백해진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는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숟가락질을 했다. 그가 순식간에 그릇을 비울 때까지 나는 국을 뒤적거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내 머릿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이 일제히 떠오르고 있었다. 고기를 썰어 내던 아버지의 커다란 손과 냉동고에서 흘러나오던 날카로운 냉기, 그리고 수군거리며 지나가던 이웃들의 시선. 그는 내가 남긴 음식을 보더니 혀를 차며 일어섰다. 생각을 거두고 그를 따라 황급히 일어나는 순간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회사는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물건이 빠지는 대로 재고를 파악하고 고기를 수급하는 일에 매달렸다. 새로 들어온 주문서를 받아 들고 냉동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후덥지근한 열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문을 닫고 불을 켜자 바깥과 완전히 공간이 단절되었다. 숨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창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발밑에서 성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단한 얼음처럼 굳어진 돼지들이 일렬로 걸려 있었다. 나는 매달린 돼지들의 수를 세고 분류 작업을 했다. 장갑을 낀 손에 냉기가 뻗쳐 올 때마다 영안실 안에 보관 중인 아버지가 떠올랐다. 집에서 도망쳐 나오던 날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은 헝클어진 퍼즐처럼 불완전했다. 늘 인상을 쓰고 있어 미간 사이 깊게 팬 주름과 몸에서 사라질 날이 없었던 술 냄새, 그리고 칼질에 잘려 나가는 고기들을 만지던 손, 장갑을 적시는 핏물…….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기억들이 해동이 시작된 것처럼 한꺼번에 녹아내렸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몸을 서서히 마비시켰다.

  작업을 시작하고 한 시간이 넘어가자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동작이 눈에 띄게 둔해지고 숨이 가빠졌다. 입김을 훅 불어 보자 손까지 도착하기 전에 냉기로 변해 버렸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창고를 나오자마자 옷과 머리에 엉겨 있던 냉기가 빠르게 흩어졌다. 두 팔을 벌리고 가만히 서서 살갗에 곤두선 털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음지에서 나와 햇볕에 몸을 말리는 뱀처럼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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