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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보람 Mar 20. 2023

울음이 녹기 시작했다

#4  돼지들의 울음소리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화물트럭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트럭 위로 넘치도록 쌓인 돼지들이 보였고, 그 더미 안에서 절규하는 돼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혹시나 건질 물량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사장은 낙담한 표정이었다. 쉴 새 없이 돼지들을 나르는 트럭들을 쳐다보고 욕지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농장까지 갈 것도 없다. 차 돌려.”

  사장의 말을 듣고 거울을 보며 길의 뒤쪽을 살폈다. 마을에서 트럭이 다닐 만한 길은 하나뿐이었다. 돼지를 살처분하려고 온 관계 차량과 장비들로 인해 돌아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계속 안으로 들어간 다음 반대편으로 돌아 나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텅 빈 축사를 유령처럼 맴돌고 있었다.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포클레인으로 파 놓은 땅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왕릉을 만드는 것 같았다. 구멍 바닥에서는 비닐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하얀 마스크를 쓴 관계자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들어오는 트럭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손짓에 따라 화물칸이 서서히 기울어지자 그 안에 가득 쌓여 있던 돼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나는 사람과 동물의 비명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오직 선명한 공포로만 이루어진 소리. 수백 마리의 돼지들이 일제히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닐 가운데로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돼지들이 땅으로 밀려 나온 물고기처럼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광경은 현실과 멀어 보였다.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발버둥 치는 돼지들 위로 흙을 덮는 작업이 이어졌다.

  “원래 주사를 놔서 죽여 버리는데….”

  사장은 말끝을 흐리며 창문을 내렸다. 밖으로 침을 뱉고 나서 느리게 움직이는 앞 차량을 향해 고함을 쳤다. 주변을 살펴보니 거대한 원형으로 새로 메꾼 땅이 두 군데나 더 있었다. 순간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었다.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진동하는 착각이 일었다.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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