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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보람 Mar 15. 2023

울음이 녹기 시작했다

#3  이구복 씨 아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한낮의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미지근한 공기는 여전했다. 한밤에도 열대야가 계속되는 모양이었다. 인적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낮에 받았던 전화가 떠올랐다. 이구복 씨 아들 되십니까? 이구복과 아들이라는 글자가 낯설었다. 나는 문자에 남겨진 병원 주소를 발견하고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듣기로는 동물이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리를 숙여 주차된 차 아래를 쳐다보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길고양이가 꼬리를 움직이며 긴장했다. 고양이가 내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는데. 고민하는 사이 고양이가 느리게 몸을 일으키더니 담장을 따라 사라졌다.

  이상한 소리는 여전히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전봇대 뒤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들여다보고 담장 너머에도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떨쳐 내려고 고개를 흔들어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문득 오랜 기억 속에서 비슷한 소리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전국적으로 돼지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적이 있었다. 보통은 한 지역에서 끝나고 마는데 초기 차단 실패로 인해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상황은 속수무책이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돼지 농가들의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회사가 거래하던 농장에서도 살처분에 들어간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물량이 부족해지자 사장은 나를 데리고 직접 농장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는 방역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기다란 호수를 들고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도로에는 소독약이 끊임없이 흘러내렸고 차들은 천천히 그 위를 지나갔다. 언젠가 보았던 재난 영화에서 바이러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던 장면이 겹쳐졌다. 실제로 돼지들에게는 끔찍한 재난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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