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왜 교복을 입는가?
다시 만난 세계 - 10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IP 기반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 드라마와 같은 영상 콘텐츠부터 게임, 웹툰, 책, 음악 등이 속한다.
한국 대중음악이라 불리는 K-POP 안에는 다양한 갈래가 있겠으나, 현재 이를 대표하는 것은 아이돌 그룹의 음악일 것이다.
엔터산업의 콘텐츠 중에서 아이돌은 가장 복합적인 존재다.
일단 사람이 콘텐츠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이 그러하다. 아이돌이 가진 속성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어렸을 적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는 연습생 기간을 거쳐, 꿈꾸던 무대에서 데뷔하는 꿈을 이루는 서사를 갖는다. 유년시절부터 활동하는 현재까지 지나온 시간은 아이돌이라는 콘텐츠를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아이돌은 소속사의 의도대로 훈련되고 만들어지지만, 각 개인의 노력과 매력 그리고 능력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대중의 인기는 정답지가 없다. 게다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보니, 그 어떤 콘텐츠보다도 팬들 각자의 취향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 복합성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속성 때문에 덕후들은 아이돌에 열광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같은 이유 때문에, 콘텐츠 자체이자 사람인 아이돌에게 그동안 당연시되는 것들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이돌은 왜 교복을 입는가?
교복은 굉장히 불편한 옷이다.
나에게 교복은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강요되었던, 규율과 규제의 동의어였다. 크게 팔을 들 수도 없고, 뛸 때도 한 없이 불편하고, 조신하고 단정함이 자동적으로 갖춰지는 그런 옷이었다.
중학교 입학할 때는 어차피 클 거니까 한두 치수는 큰 것을 입어야하고,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내내 아빠 양복 같은 어벙한 사이즈를 입어야 했던 것에 이골이 났던 나머지, 딱 달라붙은 사이즈의 교복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 더 불편해지고...악순환이었다.
10대 내내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바랐다.
아이돌 산업에서 교복은 판타지에 가깝다.
교복을 입는 대상은 (미성년 혹은 그에 준하는) 불완전한 존재이자 근본적으로 ‘미성숙하고, 연약하며, 순수함’을 가진 소녀(혹은 소년)라는 이미지를 내포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혹은 무대에서 연습생이나 아이돌들이 교복을 입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교복이 주는 속성을 이용하는 것이리라.
여성 아이돌들이 그냥 입고 서 있어도 불편해 보이는 짧은 교복을 입고 과격한 춤을 추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성 아이돌에게 교복은 아이돌 개개인의 아티스트성을 지워버리고는 한다. 교복을 입은 소녀 즉, 영원히 자라지 않고, 보호 본능을 유발하는 객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커떽 논쟁
커떽에서 커는 귀여움의 다른 표현이고, 떽은 섹시함의 다른 말이다. 주로 걸그룹의 남성 팬덤에서 어떤 멤버를 특정하며, 둘 중 어떤 이미지에 어울리는지 논쟁하며 즐기는 것을 지칭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대상이 보통 여성 아이돌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말하며 노는 ‘놀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외모로 평가하고 성적 대상화하여 희롱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더 끔찍한 것은 미성년자 멤버들에게까지도 떽 이니 하는 표현을 쓰면서, 해당 멤버가 볼 수 있는 공식 채널들에서도 거리낌없이 저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돌이니까, 연예인이라면 그냥 감내해야 하는 부분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끼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채, 상처를 주는 인간은 사랑할 자격이 없지 않나.
꽃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다. ‘꽃’과 관련된 표현은 그동안 칭찬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남성들이 다수인 그룹에 유일한 여성이 있을 때 “~의 꽃”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에는 외적인 아름다움, 연약함(혹은 성적 의미) 등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언제부턴가 나도 이 단어를 쓸 때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게되는 경험이 있었다.
내 최애 그룹의 초기 1~3집 앨범 시리즈는 꽃 3부작으로서, 유기적으로 이어져 완결성 있는 시리즈로 칭찬받는다. 노래 가사 속 지칭하는 꽃은 이 노래를 부르는 화자가 아니라, 상대(너)를 지칭하며 너를 사랑하며 빛으로 비추고, 결국 만개하여 함께 축제를 즐기자는 서사로 이어진다. 이는 살짝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조금 더 고민하고, 관점을 달리하고, 음악적인 퀄리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변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