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와 나라는 운명공동체
다시 만난 세계 - 11
최애와 나, 운명공동체
덕후들 사이에 유명한 밈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오늘부로 ㅇㅇㅇ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ㅇㅇㅇ과 나는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ㅇㅇㅇ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ㅇㅇㅇ 자리에 최애의 이름을 넣어서, 그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강조할 때 쓰는 표현이다. 사실 웃자고 쓰는 표현일 때가 많지만, 덕후들이 최애와 본인을 동일시하는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팬과 본인의 길을 잘 나아가는 아티스트와의 관계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기 마련이다.
어떤 일이든 같은 편(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팬들을 편들아 라고 부르는데, 팬과 편은 사실상 동의어라는 점에서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이 될 준비가 되어 있으나, 이런 견고한 신뢰관계가 깨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영화 <성덕>의 경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영화 <성덕> 은 이젠 범죄자가 된 연예인의 팬이었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감독은 최애로부터 인정받은 '성덕'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범죄자를 좋아한 죄가 많은 팬이 되어버렸다고 회고한다. 잘못한 것도 없이 부채의식을 갖게 된 그는 같은 덕후 친구들과 함께 과거를 돌아본다.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했던 순간들마저도 부정당했다는 감정은 최애에 대한 분노를 넘어 슬픔에 이르게 된다. 최애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려 자연스럽게 탈덕하는 것이 안전 이별이라면, 이것은 정말 최악의 사례다.
물론 범죄 행위나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데도 흔히 말하는 '뇌절'에 이르러 끝까지 '실드'를 치는 소수의 팬들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할지라도, 흐린 눈은 적당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덕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취향 존중, 그것이 덕후들 사이의 룰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걱정은 없지만
여성의 아이돌의 경우 당연하겠지만(당연하다는 것마저도 슬프지만) 탈덕을 유발할 정도로 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만큼 그들이 더 도덕적이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사회가 여성 연예인을 바라보는 도덕적인 기준이 현저하게 높기 때문이다.
여덕으로서 최애에게 실망할 일은 적지만, 여러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순간들을 겪게 된다. 특히, 슬프고 분노에 차는 대표적인 순간은 비방과 성희롱적인 발언들을 목격할 때다. 지금은 줄어들긴 했지만, 당사자에게 내상을 입힐만한 연관 검색어들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색어 정화 작업을 해야 했다. 수천수만 명이 다 같이 나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어찌할 수 없음에 암담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최애의 '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