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투하듯 삽니다 - 11
어떻게 하루를 보낼 것인가?
퇴사 이후로 24시간이 온전히 주어진 지금, 모든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
회사는 당신의 시간을 삽니다
얼마 전, 친구 I와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왜 많은 회사들은 재택근무를 싫어하는 것일까?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정해진 업무를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어디에서든, 몇 시에 하든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재택근무에 완벽 적응했던 (사실은 1년 반밖에 다니지 않은, 전직) 스타트업 종사자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며 '으 꼰대 집단' 이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었다.
비상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 친구 I는 아주 어른스럽게 해답을 내놨는데, 애초에 그런 집단은 '일을 잘 끝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정한 시간에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회사가 주 5, 9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혹은 더 많거나 적은 시간)을 사는 대가로 주는 것이 '월급'이고, 그 월급은 '복종과 '충성'과 동의어다.
회사라는 조직이 노동자를 통제하면서, 선택권을 빼앗 아가 버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퇴사로 자유를 얻었으나
퇴사를 하고 얻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오로지 나의 몫이 되었다. 언제서부터인가 회사가 원하는 것을 업무시간에 해내고, 집에 와서는 방전된 상태로 무료하게 저녁시간을 흘려보내며 '내 시간' 잃어버렸던 나였다. 그러나 이제 24시간을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게 된다.
기분을 느끼고, 어떤 일들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먹을지 같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하루를 채워나간다. 행복의 3대 조건(선택, 성취감, 인정) 중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가장 먼저 자리하는 것은 그만큼 선택이 중요하다는 뜻 아닐까?
아득한 300년 전, 토마스 제퍼슨 옹도 “나는 자유가 부족해서 오는 불편함보다는 자유가 넘쳐나서 오는 불편함을 겪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 사람들은 기질상 파이어족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친구 L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 취업을 하고 나서 까지 나인 투 식스의 규칙적인 생활에 익숙해진 나머지 자율성이 주어져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곤란해한다는 것이다. 파이어족까지는 아주 멀었지만, 자발적 퇴사자로 살아가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유도 많으면 숨 막히더라
퇴사하고 나서 두 달쯤 되었을 때 갑작스러운 우울감이 찾아온 적이 있다. 회사를 떠나고 나서는 처음엔 정말 즐거웠다. 와우! 내 세상! 내 시간! 이러면서 언제나 기분이 한 톤 올라가 있었다. 그러다가 무한한 선택지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J형로 끝나는 MBTI에 계획 세우는 것을 즐겨하는 나였지만, 혼자 매일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은 좀 지치기도 했다. 게다가, 그 계획들은 내 능력 밖이었고(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지키지 못한 결과들이 쌓이다 보니 무력감이 찾아온 것이다. 이러려고 회사를 떠났나?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러다가 '미치치 않고 혼자 일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지난 <솔로 워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뼈를 때리는 구절들에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 회사를 떠날 때는 환상적인 기분이 든다. 그러나 곧 문제에 부딪힌다. “매일 아침마다 계획을 세우고 자유의지만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일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듭니다. 압도적인 선택권과 맞닥뜨리기 때문이죠” 매일매일 선택하는 일은 지치게 만든다.
-루틴은 모든 일을 쉽게 만들어준다.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루틴을 짜 놓으면 매일 아침 그날의 계획을 새로 세우는 것보다 훨씬 적은 의지력으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현실적인 기대를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세요. 우리는 초인이 아닙니다."
지긋지긋하던, 벗어나고 싶던, 뻔하고 반복적인 흐름을 만들라고? 회사다닐 때랑 똑같잖아?
라며 경악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루틴'이라는 점에서는 다르다.
선택의 피로를 적당히 제거해주는 용도랄까. 그리고 이 루틴들을 너무 엄격하게 지킬 필요는 없다. 되도록 지킬 수 있는 수준의 적당한 계획만 세우고 융통성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지키지 못해도 '스스로를 용서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나는 매일 같은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 하고, 약간의 변주를 주고 있다.
그러면서, 무엇이 내게 잘 맞는 삶의 방식인지, 무리스럽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찾아보려 한다.
혹자가 그랬던가. 백수가 가장 바쁘다고.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간다. 가끔은 하루를 돌아보면 분명한 것이 없는데 대체? 라며 갸웃거릴 때도 있다.
그럴 땐 다시 한번 되새긴다. 오늘도!
용서하는 법을 배우세요. 우리는 초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