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의 사람들(관계의 농도)
장투하듯 삽니다 - 18
퇴사할 때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퇴사를 할 때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좋은 동료들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당연히 돈이다)
어딜 가나 힘들게 하는 사람은 있으니 그건 디폴트라고 치고, 그 외에 열정적이고 똑똑한,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었다. 퇴사를 하게 된다면 이 사람들과의 인연도 끝이겠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 도했다.
회사 외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무섭게 쏟아지던 업무 카톡과 전화들이 사라졌고, 만약 동종업계로 이직했다면 업무적 필요에 의해 친분을 나누었을 정도의 사람들과도 이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서로 필요에 의해서, 연락했던 관계였으므로 그것은 당연했다.
처음엔 내가 이 업을 떠난다면, 일을 하며 만나 이제는 친해진 친구, 동료, 선후배들과도 이전처럼 편하게 연락하며 지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이어져온 인간관계에서는 사회생활을 만나며 친해진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예전만큼 공감할 이야기도 줄어들게 될 것이므로, 그렇게 차차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퇴사 후의 사람들 - 관계의 농도
하지만, 연락을 하는 사람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꾸준히 연락하고,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보다도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어 있었다.
업무로 만난 파트너사 이사님은 오히려 퇴사를 하고 한번 밥을 먹자면서, 전화주시기도 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업계 후배로서 응원해주고 싶었다고. 왠지 나도 이렇게 후배들에게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 생활 중에 만든 인연 중, 각자 어둠의 시기에 든든한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감정적인 교류를 했던 사람들과는 고맙게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제는 동료가 아니라, '친구'라고 정의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지만. 관계의 가짓수들이 줄었을지언정, 농도 짙게 정리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인연이 되려면 한쪽이 노력하더라도 유지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멀어지게 되어있었을 거라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연락의 횟수보다도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편협함과 외로움
변화한 인간관계 속에서 두 가지를 조심하려고 한다.
첫째, 편협함을 경계해야 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만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면 다름을 견디는 능력 같은 것이 사라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회사를 다니면서 끔찍이도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도움이 되었던 건 현실이라면 도저히 친구가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과 하루 종일 지내면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운이 좋다면 모든 것이 통하는 일생일대의 친구 같은 이들도 만나게 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로 묶여서 서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참 저 사람은 특이해."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더라도, 일을 잘하는 것은 별개다. 취향도 정반대이고 배경도 다른 사람과도 일에서 손발이 잘 맞을 수 도 있다. 결국 '일'이라는 것이 이런 다름을 감내하게 하는 강요된 '포용성'을 심어준 것이 아닐지.
이제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사람의 그릇이 좁아지는 것을 경계하며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외로움 또한 그러려니 해야 한다.
관심 있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업계에서 콘텐츠에 대한 것이나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삶에서 큰 기쁨일 것이다.
지금 나는 그곳에서 한 발짝 멀어진 상태고, 지속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줄었다. 절대적인 대화의 횟수가 줄었고,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기도 하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심사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는데 이를 함께 나누고 해소할 사람이 없다는 점에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심리를 전공한 친구 H와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H에 따르면, 인간의 외로움은 나쁜 것이 아니며 지속적인 우울감이 더 안 좋은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해결되는 감정이 아니고, 끌어안아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때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란 것. 가수 아이유가 인터뷰에서 탁월하게 정리했듯이 "외로움에는 반대말이 없다. 즉, 무찌를 수 없나 보다."
외로움이 나의 한 조각임을 자각하고 공생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와의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