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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리드 Aug 05. 2022

베이비부머와 그 아이들

장투하듯 삽니다 - 24 

존경하는 인물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도 '존경하는 인물'을 적어내라는 숙제가 많았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위인(주로 유관순 님이었던 것 같기도)이나 대통령, 과학자, 예술가 등을 단골손님으로 꾸역꾸역 적어내곤 했다. 

심지어 첫회사 임원면접 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물음에 단재 신채호 선생을 반사적으로 얘기하기도 했는데, 내가 사학과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님 그냥 어른들의 마음에 들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단재 신채호 선생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아와 비아의 투쟁 정도를 본 걸 제외하고는 막상 대학에 와서는 선생의 책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여하튼 '존경하는 인물을 말하시오'라는 질문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했다.


이제는 공경에 가까운 존경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는 어떤 사람처럼 되고 싶은가? 20년 후의 나의 모습은? 같은 자기 계발적인 질문으로 변형되어 질문 받은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럴 때마다 몇몇 떠오르는 사람들은 있긴 하나, '존경'까지는 아니고 저런 삶을 살면 참 좋겠다 정도의 라는 게 적절하겠다.


그럼에도 요즘 나에게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제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여전한 호기심으로 새롭게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그 와중에 한 스푼의 유머를 놓치지 않는 베이비부머 우리 엄마! 

라고 말이다. 



베이비부머와 그 아이들

나와 같은 밀레니얼들의 부모들은 흔히 전쟁 직후 출산율이 높은 시절 태어나 베이비 부머라고 불린다.

베이비 부머들은 수십 년간 한 직장에 근속하여 성실하게 자기 몫을 감당해왔다. 이탈하지 않고 근면하게 무언가를 지속한다면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업일꾼'으로서 보내온 세월 동안 국내외 경제상황과 맞물려서 투자의 귀재가 아니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만한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누렸다. 

자식의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의 아이들인 밀레니얼은 역사상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하는 세대가 되었다. 그 뿐 만 아니다. 베이비부머들은 부모님들을 책임지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일부 부머들은 자기 자식들의 미래가 '가난한 노년'이 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부를 물려주기 위한 여러 방법을 간구하지만, 슬프게도 부모의 부를 넘어설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밀레니얼을 지칭하는 말,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요즘 애들>, 앤 헬렌 피터슨) 이므로. 


베이비 부머들이 살아왔던 시기를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뒤집힐 만큼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신정권, 석유파동, 민주화운동, 올림픽을 거쳐 IMF와 월드컵, 금융위기, 세월호와 코로나까지 수많은 위기와 사건의 연속이었다.

이리로봐도 저리로봐도 베이부머인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시골집에서 어두운 불에 의지하여 공부를 하느라 시력이 마이너스가 되었던 시절을 겪었던' 세대는 이제 PC를 거쳐 모바일, 재택근무의 활성화까지 몸소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급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특유의 의지와 학습력으로 정말 잘 적응해 온 편이다. 


베이비부머는 유튜브의 헤비 유저이며, 

'부머 쇼퍼(베이비부머와 쇼퍼의 합성어로, 50·60세대 소비자)'라고 불릴 정도로 전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은 소비와 지출을 하는 큰손들이다. 온라인 카드 결제금액 증가율은 이미 20-40대를 뛰어넘었고,  MZ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패션 플랫폼 중에서도 부머 쇼퍼를 타깃으로 한 서비스도 출시된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위 로는 노인이 되어버린 부모님을, 아래 로는 집을 떠나지 않은 캥거루족 자식들을 챙기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베이비부머들.


기업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모든 공정을 자동화하고, 그로 인해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계층 이동과 같은 기회의 사다리는 점차 사라지고, 희망찬 미래는 점차 흐릿해져 가는 상황에서 필연적인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세대 갈등' 은 커져갈 조짐이 보인다. 

각 세대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할 것이므로. 

예를 들어, 베이비부머들은 요즘 애들이 왜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지 않아하는지 온전히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베이비부머에 대해 드는 밀레니얼인 나의 감정은 복합적이 될 것 같다.

밀레니얼이 같은 듯 다른 Z세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면을 느낄수록 베이비부머들에 대한 이해력이 조금은 더 커지지 않을까. 

그들이 버리지 못하는 책임감, 미래에 대한 낙관, 위기에 대한 높은 역치와 엄청난 적응력.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한 그런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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