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투하듯 삽니다 - 25
엄마의 친구들
엄마는 일에 진심이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엄마의 친구들도 그런 것 같다.
나와 동생과 엄마 고향인 대전에서 엄마는 평생을 살았다. 엄마는 여전히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회사 동기들과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엄마가 먼저 아줌마, 아저씨들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고, 우리가 그 영수 아저씨는 잘 지내? 순자 아주머니는? 그 나랑 동갑이던 걔 거기네 집은 어때? 라며 질문하면 항상 새로운 소식이 업데이트되고는 한다.
엄마의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 건 재미있다.
매번 나와 동생이 놀라는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아니, 그 아저씨는 정년 퇴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일한다고?
또 독서실을 다니면서 자격증을 땄다고?
무슨 공고를 보고 또 다른 일을 구했다고?
아무리 생산가능 인구(15~64세)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연금 소득자들에게 4대 보험이 부담된다고는 하지만 세상에!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일까?
물론 노후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일을 멈추지 않는 경우도 당연히 많고 그것에 대해 판단할 자격은 나에게 없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아둔 자금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일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구는 '일밖에 모르는 베이비부머' 들이다.
우리 엄마를 비롯한 평생을 일해온 베이비 부머들은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엄마의 경우 우리가 하도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서(대체 왜 수십 년 일하고도 쉬지 않냐. 더 그 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자리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느 정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당분간 쉴 거라고 말했었고, 안식년 일 년을 쉬었지만 작년 말~올 초에 두 딸이 백수가 된 시점에 다시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엄마의 능력을 존경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 참 딸로서 민망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하.
내 친구의 엄빠들
듣자하니 엄마의 친구들 뿐 아니라, 그들과 비슷한 또래인 내 친구들의 엄빠들 또한 그러하다.
경찰 출신으로 정년 퇴임한 후 높은 경쟁률을 뚫고 5년짜리 학교 보안관에 취직했다는 친구의 시아버지 이야기나, 퇴임 전 일과 전혀 상관없는 학원 운전기사일을 하고 있다는 어떤 아저씨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아저씨는 관리 사무소 소장이 되기 위한 시험에 응시했고, 친구의 친구 엄마는 정년 퇴임 후 다시 계약직 선생님으로 학교로 돌아갔다고 한다.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일할 2030 대가 없어서, 퇴직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을 재고용하고 있다는데, 비록 임금은 줄었을지라도 매우 만족하면서 다닌다고 한다. 분명 앞으로 인구가 더 고령화되고 노동 가능 인구가 줄수록 일하는 베이비 부머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애초에 '자아실현'의 역할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비 부머들이 일로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아실현을 떠나 이렇게 어떤 일이든 해야 만한다는, 일을 하지 않고는 몸이 간지러워서 살기 어렵다는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유럽 일부의 국가들처럼 완전하게 노후를 보장 않기 때문이 아닐까. 베이비 부머들은 자신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들까지 모두 책임을 지려고(져야)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짠하다.
어찌 되었건 일을 해야 한다는 평생의 사라지지 않을 두려움. 만약 사회 안전망이 촘촘했더라면 그렇게 어떤 일이든 찾아 헤맸을까?
베이비부머의 자식이자 밀레니얼인 나의 경우도 그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으므로, 불과 1년 전만 해도 일로서 나를 증명하려고 했고, 회사에 소속되어 열심히 인정받는 삶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었다. 아마 역사적(?), 상황적, 개인적인 변화가 없었더라면 여전히 부머의 뜻을 이어받아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밀레니얼은 어째서 그들처럼 평생 동안 어딘가에 속해 일하고 싶지 않게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국가도 회사도 그 어떤 것도 앞으로는 더욱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의 삶을 거쳐오며 그렇게 열심히 한 곳에 일하는 것만으로 내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다른 수단을 간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우리가 겪어온, 그리고 앞으로 겪을 세계는 다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