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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필 May 16. 2023

생일을 잊은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 선물 고르기

  와이프 생일이었다. 생일을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업무로 바빠지는 시기와 겹치면서 이 시기 즈음이라는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이때, 또 어떤 선물과 이벤트를 해주어야 하겠다는 계획을 마땅히 준비하지 못한 채 와이프의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와이프는 내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선물이라고 했다. 미리 먼저 알아서 마음에 들 만한 선물을 사놓지 못 한 나에게 회초리 같이 들렸다. 더 미안한 것은 일부러 비아냥대듯이 말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생일에 대한 기대가 오랜 시간 깎여 나갔다. 선물을 누군가가 주기 전부터 기대하는 태도에서 실망을 하지 않기 위해 자꾸만 들뜨는 마음을 애써 잠재우려는 노력으로 나아갔고 결국에는 내 생일에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선물을 받게 됐을 때 감사한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 굳이 내 생일을 먼저 묻거나 챙기기 전에는 내가 먼저 내 생일에 대해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아직도 누군가에게 생일을 얘기해 주면 기대하는 심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런 기대감이 생기는 것의 결과가 항상 실망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기대감이 들고 설레는 느낌이 들면 좋기보다 오히려 불안해지며 불쾌함을 느낀다.

  이게 결국 오랜 습관처럼 되어 버리면서 가까운 사람의 생일조차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까지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생일이니 특별하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어딘가를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감각이 지나치게 무뎌진 것 같아 당혹스럽다.

  와이프는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지만 괜히 제 발이 저린 나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먼저 그 사람의 필요나 갖고 싶어 하는 어떤 것을 준비하는 센스 또는 노력 없이 그저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게 갖고 싶은지를 성실하게 묻기만 할 뿐이니 섭섭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변명을 하는 것이 되어 버렸지만 와이프와 함께 하는 매일이 감사하고 선물 같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실이다. 매일이 특별하진 않겠지만 매번이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들로 꼽을 수는 없겠지만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이다.

  와이프는 나의 생각과 똑같은 나의 복제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가 기뻐하는 것을 통해 사랑을 표현해야 정말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일은 어쩌면 상대에게 편해지면서 무감각해진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생각이 다르고 이제는 조금 어려워졌더라도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이 특별하다면 언제든 선물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테니 좀 더 자주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더 애정으로 관찰하고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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