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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에게) 힘들면 말하세요. 기적은 안 일어납니다.

아무리 좋은 리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by 옹봉

전편에서 '싫은 일 백 개보다, 하고 싶은 일 하나를 말하는 게 유리하다'라고 했다.


https://brunch.co.kr/@ongbong/130


하지만 동시에, 싫은 건 분명히 말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말해 기회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싫은 걸 말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하다.


3년 차, 쪽지에 적어간 세 마디
"저는 이곳과 맞지 않습니다."

1년 차의 나는 별명이 '잔다르크'였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기준도 경험도 없던 나는 말 그대로 소처럼 우직하게 일했다.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면서 그냥 다 해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야근하고, 주말에도 잔업하면서 불만 한마디 없이

ㅡ 어쩌면 투쟁하듯 그렇게 일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한 일도 있었고,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일도 많았다. 그래서 그 시절 내가 가끔은 안쓰럽지만 적어도 그때는 몰랐다. 그냥 묵묵히 해냈다.


2년 차까지 그렇게 일했더니 3년 차에는 전략팀으로 발령이 났다. 나를 보낸 팀장은 미안하다고 했고, 데려온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야근에 내성이 있는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그 정도로 어마무시한 팀이었다.


3년 차의 나는 1년 내내 정말이지 '개처럼' 일했다.

선배들의 굴림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젊은 남자 꼰대'가 뭔지를 몸소 배웠다.


3년을 군말 없이 버티고 맞은 12월, 면담 날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팀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00님은 할 말 없지?"


팀장에게 나는, 말없이 주어진 일을 해내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고

그런 나에게서 불만이나 문제 제기 같은 건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 거다.


"아니요, 할 말 있습니다."

혹시라도 말 못 할까 봐 작은 쪽지에 적은 세 줄을 읊었다.


"저는 이곳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팀장은 벙찐 얼굴이었다.

"뭐가 안 맞는다는 거지?"

"일, 문화, 사람 다 안 맞습니다."


그는 한참을 설교하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00이가 군대를 안 다녀와서 그렇구나."


그때 느꼈다.

이 리더와 나는 절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구나.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3년을 견디고, 드디어ㅡ 할 말을 했다.


아무리 좋은 리더여도,
말하기 전에 먼저 헤아릴 순 없는 법


마케팅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일복은 많았다.

팀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후배가 있었는데,

우리 둘 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어진 일은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거기에 괜한 자존심 같은 것도 작동했을까?

아무튼 나와 후배에게는 주어진 일에 대해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굉장히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묵묵히 해낼수록, 일은 더 많아졌다. 해내면 또 주어지고, 해내면 또 주어지고ㅡ일은 그렇게 불어만 갔다.


그리고 팀에 또 다른 후배가 있었다. 그녀는 우리처럼 일 잘한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한 가지가 달랐다.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우리의 리더는 팀원에게도 임원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받는 내가 본 중 가장 훌륭한 리더였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말하지 않아도 리더가 먼저 헤아려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후배가 팀장에게, "지금 맡은 일이 너무 많아 다 해내기가 힘듭니다"라고 했을 때,

팀장은 즉시 수용하며 "말해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일은 적정 수준으로 조정되었다.


그때 알았다. 그리고 배웠다. 힘든 건 말해야 아는구나.



똑똑하게 힘들다고 말하는 법
감정이 아니라, 성과의 언어로


이때의 경험과 깨달음이 쌓여 이제 나는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전제가 있다.


1. 남발은 금물이다.

습관처럼 매번 힘들다 힘들다 해버리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 말은 효력을 잃는다.


한 선배가 있었다. 그녀는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맨날 힘들다고 하면서도 항상 맡은 일을 해내는 걸 보면서 우리는 모두,

저 사람은 맨날 힘들다고 하는 사람ㅡ 으로만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정말 힘든 순간, 도저히 참기 어려운 지경의 순간이 왔을 때

그녀가 이미 뱉어 놓은 힘들다는 말들에 가려

힘들다는 언어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 성과의 언어로 이야기하자.

회사원은 다 힘들다.

남의 돈을 받고,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노동이라는 재화를 제공하는 피고용자의 숙명인데.

어찌 안 힘든 직장인이 있을까?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제가 진짜 힘든 순간인지를.

몇 번을 참고 참다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ㅡ 역치를 넘기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는 말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고도의 스킬이 있다.

그냥 힘들다ㅡ라고 말하는 건 감정의 언어인데, 여기에 회사원답게 성과의 언어를 한 스푼 올리는 거다.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은데, 다른 업무가 많아 집중이 어렵습니다."

"일정을 준수하려면, 지금 케파로는 어려울까 봐 걱정이 됩니다."


단순히 내가 힘든 게 문제라기보다는,

일이 성과 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

이건 단순 하소연이 아닌 성과를 위한 협의가 된다.

그럼 리더도 적절한 방법을 제공해 줄 확률이 훨씬 높다.


마치 남녀 관계 같다. 관계가 너무 힘들 때, 꾹 참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해볼만큼 해봤다면 상대에게 분명히 말해야 하는 때도 온다.

그래야 관계가 오래간다.


리더와 팀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참지 말고, 이야기하자.
나를 위해서, 팀을 위해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말해야 바뀐다.


침묵은 미덕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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