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럴 연차가 되었습니다.
연대의 시절, 욕하는 힘으로 버티던 때
직장 생활 초반에는 회사 고민을 동료들과 나누는 게 너무 당연했다. 매일 만나서 힘들었던 점을 토로하고, 공감받고, 위로받고 같이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때는 그게 큰 힘이 됐다. 버티게 해주는 연대감, 그리고 가까워지는 관계. 그 시절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배설의 끝에서 마주한 감정
찜찜함과 허무함
어느 날도 여느 때처럼 동료들과 회사 욕하고, 답답함을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찜찜했다. 어딘가 허무하고, 어쩐지 미안했다.
“이렇게 떠들어봐야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잖아.”
“이건 그냥 가십 아닌가?”
"이걸로 충분한가?"
그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입 밖으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제가 뭐라도 해볼게요.
팀장님에게 이야기해 볼게요.”
다들 고맙다고 했다. 아마 그때가 전환점이었다.
욕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사람들이랑 실컷 욕만 하고 끝나는 건 내 연차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팀에 부정적인 에너지만 보태는 꼴이 되는 거기도 하고. 뭐 하나 도움은 되지 않고.
이 정도 연차라면, 팀장에게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는 책임이 생겼다면, 팀이 고통받고 있는 부분을 캐치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에 서야 하는 연차가 되었다는 자각이었다.
그때부터 동료들과 부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줄였다.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달갑지 않았다. 그 시간에 해결을 하거나, 아니면 입 닥치고 적응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팀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제는 정리해서 팀장님에게 전달했다.
“팀에서 이런 부분이 어려움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은 실제로 반영되기도 했다.
동료는 위로해 주지만, 상사는 해결해 준다.
동료에게 털어놓으면, 그건 결국 가십으로 끝난다. 속은 조금 시원할지 몰라도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깨달았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인풋 없이 아웃풋을 바랄 수는 없으니까.
동료는 위로를 줄 수 있지만, 솔루션은 상사가 준다. 그리고 실행 권한을 가진 사람 역시 상사다.
개인적인 업무 고민도 마찬가지다. ‘요즘 일 너무 버겁다’, ‘이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다’ 같은 이야기를
동료에게 하면 공감은 얻지만, 해결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람, 리소스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 솔루션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상사다.
그러니 시니어들이여.
업무 고민은 동료가 아니라 상사에게 말해보자.
이제는 그런 연차가 되었다.
감정의 공유보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하는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