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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에게) 적을 만들지 마세요, 당신이 옳더라도.

세상은 좁고, 업계는 더 좁고, 언젠가는... 또 만나더라고요.

by 옹봉

2년 전쯤이던가? 내가 8년 차쯤에, 5~6년 차인 주니어 후배와 일하면서 몇 번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같은 파트로써, 다른 팀에 협업 파트너를 두고 프로젝트성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협업 파트너가 어마무시한 빌런이었다. 능력 대비 열정이 지나치게 과해 여러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분이었는데. 예를 들면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하거나, 잘못된 숫자로 보고가 올라가 리더십에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던지 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우리보다도 연차가 높은 분이셨기 때문에 10번 중에 9번 정도는 이 악물고 했던 대답을 다시 해드리며 참고 지내다가, 10번째에 가서는 폭발하게 되어버리곤 했다.


내 후배는 그럴 때마다 참지 못하고 논쟁을 벌였다.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짚으며 따발따발 대응했고, 그분 역시 물러서지 않아 종종 갈등이 격화됐다. 나는 중간에서 후배와 협업 파트너 사이를 조율하며, 둘 사이의 다툼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논쟁을 좋아하는 ENTP로써, 논리적 흐름이 맞지 않는 대화를 지속하는 것조차 불편한 나이기에 후배의 불만과 폭주 동기ㅡ그러니까 그 마음 자체는 이해가 충분히 갔다. 그러나 같은 편이 되어 싸움을 함께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후배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차분하게 이메일로 우리 쪽 입장을 정리해 전달하고 그쪽에는 협조 요청을 구했다. 논쟁이 거칠어지면, 삼자대면으로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자 했다. 가능한 한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평화적인 해결을 유도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함도 따라왔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후배에게 충분히 서운함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는 내가 같은 편이 되어 함께 싸워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후배에게는 내가, 충분히 싸워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러지 못하는 겁쟁이 소시민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직접적인 싸움을 원하지 않고 평화적 해결을 도모했을 것이다.


무조건 참고 호구처럼 일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거다. 격한 감정으로 서로 상처 주면서까지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 상대를 위함이 아니다. 철저하게 나를 위함이다.



1. 감정 소모할 필요가 없는 관계니까. 당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1~2년 차 신입 때 팀장님이 붙여준 내 별명은 "쌈닭"이었다. "잔다르크"도 있었다. 마치 투쟁하는 여전사처럼,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상대에게 끝까지 내 주장을 펼쳤다. 그땐 비즈니스 매너가 뭔지도 잘 모르는, 아직 회사원으로써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상태였기에, 말이나 행동이 아마추어 같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말들은 가끔 작고 큰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소모되는 것은 나의 감정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회사에서 만나고 일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회사를 떠나면 더 이상 사적으로 만날 일이 없는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굳의 나의 소중한 에너지와 마음을, 내 인생에 큰 중요도가 없는 사람들에게 쓸 이유가 무엇인가?


2.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수 있다.

"너 나 다시 안 만날 거 같지?"

영업부에 있을 때 17~20년 차쯤 되는 팀장님들이 습관처럼 하시던 말씀이다. 그땐 그 말이 그냥 가벼운 농담 같았다.


그런데 회사에 10년 있어보니, 회사라는 곳은 정말 신기해서, 다시는 안 볼 것 같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된다.


내가 아는 A는 같이 일하는 상무님이 너무 안 맞아서 조직을 아예 떠나 다른 사업부로 갔는데, 그 상무님이 몇 번의 발령을 거쳐 그분이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거기서 또 만나버렸다.


B는 우리 회사를 아예 나가 이직을 했는데, 거기서 협업 파트너로 우리 회사를 배정받아 여기 있을 때보다 여기 사람들을 더 많이 본다고 한다.


수장의 필요에 의해, 체스판 위 말들처럼 요리조리 불려 다니는 회사원의 숙명을 바탕으로, 그 위의 말들은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나의 자발적 의지와는 완전히 별개로. 그러니 당연히, 가급적이면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나의 인생사에 큰 도움이 된다.


3. 언젠가 반드시 도움 받아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2번과 연결되는데, 싫든 좋은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회사원의 특징 때문에, 내가 그에게 도움 받아야 할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같은 팀으로 일할 때, 혹은 유관부서로써 관계 맺고 일할 때 작은 트러블이나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는 상황이 올 때에도, 감정적으로 으르렁 거리며 싸우기보다는ㅡ 차분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최선의 협력 방식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팀을 나갈 때도 웬만하면 직속 리더 혹은 그 위 리더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웃으며 떠나는 게 바람직하다. 심지어 회사를 나가는 상황에서도, 되도록이면 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4. 당신의 평판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앞의 글에서 말한 대로, 회사는 소문의 정글이다. "그 사람 이렇대, 저 사람 이렇대ㅡ" 말 말 말ㅡ 말이 많은 곳이다. 그런 회사에서 당신이 누군가와 싸운다면? 당신이 옳았건 틀렸건ㅡ 당신에게 별로 유리한 그림이 되지 못한다. 당신과 싸운 누군가는, 언젠가 어디에서 당신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좋은 이야기를 해주지 못할 거다.



크게 보자. 당신이 옳다는 것도 안다. 그 사람이 틀렸다는 것 또한 안다. 그 사람 문제가 있다. 다 안다. 그래도 싸우진 말자. 당신의 소중한 감정을 의미 없는 것들에 한없이 소비할 필요가 없다. 굳이 그 사람과 대치하며 적대 관계가 될 필요도 없다.


차분히 대화해 보고, 정 안 되면 직접 대응하지 말자. 당신의 선임, 혹은 팀장에게 이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굳이 자기 감정을 보이며 패를 까지 않고, 보다 영리하게 일할 필요가 있다.


1~2년 시절, 한 영업팀에서 내 비즈니스만 볼 때,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크게 이해하지 못하고 논쟁을 벌인 적이 많았다. 3년 차부터 영업 전략이라는 가맹점 비즈니스의 헤드쿼터 역할의 부서에서 일하면서, 정말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 (마케팅, SCM, 수요 등) 과 교류했고 수많은 가맹점 담당님들을 대응했다. 그러면서 보다 넓은 시야를 장착했고 자연스레 비즈니스 매너도 따라왔다.


직장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평판을 지키며 장기적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크고 넓게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 우리 어떤 경우에도 적은 만들지 맙시다.


당신이 옳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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