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리, 남은 마음
「두 번째 정오」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오는 바람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 조용한 공간에서도 들릴 만큼, 마음 깊숙한 곳까지 흔들릴 만큼. 나는 멈춰 섰다.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선뜻 발을 떼지 못했다.
사람들은 선택이 곧 책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선택이란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무겁다. 잘못된 길을 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게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 후회라는 그림자가 조용히 따라오지는 않을까?
서른 살 무렵, 나는 배우였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순간을 사랑했고, 관객의 숨결 속에서 나를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의 조명이 흐려지고, 대사가 공허하게 들렸다. 모든 것이 막힌 듯했다. 꿈은 더 이상 나를 설레게 하지 않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 마치 세상이 조용히 나에게 멈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 서서히 삶을 갉아먹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잘하고 있다고. 그대로 가도 괜찮을 거라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말들이 어느 순간 나를 더 막막하게 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내 안의 목소리는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해."
그날 밤, 나는 오래된 대본을 덮었다.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조용히 혼자만의 인사를 건넸다. 인생의 전부였던 무대를 벗어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낯선 길목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멈춰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을 몰라도,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아도, 일단 걸어보자고.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뒤를 돌아보았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 걱정보다 깊은 믿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애써 눈물을 감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라 믿었던 길이 결국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실패한 꿈이, 예상치 못한 상처들이 결국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한때는 후회로 남을 줄 알았던 순간들이 지나고 보니, 그것마저도 내 삶의 일부였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는 새로운 것이 자랐고, 떠났던 길 끝에서 나는 더 깊어진 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다시 또 다른 선택 앞에 섰다. 여전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것이 곧 나의 삶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람이 불었다. 마치 내 선택을 응원이라도 하듯, 부드럽게 등을 떠밀었다.
그날 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꿈속에서 나를 응원해 주었던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변함없는 신뢰가 담겨 있었고, 조용한 지지와 응원이 내 곁을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