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 둔, 어느 며느리의 단단한 다짐
회사에서 퇴사한 뒤, 나는 뷰티샵을 3년 정도 운영했다. 주 고객은 여성들이었고, 그들이 외모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돕는 곳이었다. 속눈썹 연장부터 손발톱 네일 아트까지 시술을 했다. 그들의 손과 눈을 바라보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도 자연스레 들을 수 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며느리 네일 아트'가 떠오른다.
추석 전, 여성 고객들은 대체로 세 부류로 나뉜다. 미혼 여성, 그리고 기혼 여성 중에는 네일 컬러를 지우는 사람, 새로 컬러를 바르는 사람이 있다. 주로 미혼 여성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를 맞아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고른다. 직장 분위기상 평소에 하지 못했던 화려한 네일, 반짝이는 보석이 달린 디자인이나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아트를 시술 받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기혼 여성들의 선택은 조금 다르다. 그들 중 일부는 명절을 앞두고 기존의 네일아트를 지우러 온다. 명절엔 친척들이 모이고, 음식 준비로 손을 많이 써야 하니 염려해서이다. 화려한 손톱이 괜히 눈에 띄어 ‘한소리’ 들을까 봐 미리 정리하러 오는 것이다. 손톱에 바른 젤네일을 지우거나 투명 매니큐어나 누드톤 컬러로 손톱을 ‘단정하게’ 정돈하고 간다.
기억에 남는 기혼 여성 한 분이 있다. 그분은 새로운 네일 아트를 선택했다. 추석을 앞두고 ‘빨간색’을 발라달라고 했다. “추석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부러요.” 빨간색 컬러가 손톱 위에 발리는 동안 그녀는 덧붙였다. “시댁 가기 전엔 꼭 바르고 가요. 명절이 힘들잖아요. 그래서 이거 하나라도 하고 가면, 내 마음이 좀 낫더라고요.”
그녀의 말투에서 무기처럼 날카롭진 않았지만, 차갑게 벼려진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 단정하고 말 잘 듣는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을 잠시라도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나를 챙긴다’는 의미를 손끝에 붉게 새겨 넣은 듯. 오랜 시간 꾹꾹 눌러 참아온 감정들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혼 여성들에게 명절은 누구보다 바빠지는 시간이다. 명절 연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가족 단위의 방문, 식사 준비, 차례상 차리기, 청소와 설거지, 눈치껏 준비하는 커피와 다과까지. 대부분이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묵묵히 감당한다. 무언가 지적당할까 봐, 좋게 보이고 싶어서 조용히 스스로를 통제하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네일 컬러를 지우고, 옷을 단정히 정리하고, 나보다는 가족을 챙기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빨강 네일 컬러는 누군가에게는 무례일 수 있겠지만, 그녀는 손끝만큼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묵묵히 감내하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지는 그 명절의 무게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지켜내려는 조용한 선언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손끝에 담아 표현하는 것. 그건 그녀만의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명절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 같지는 않다고 말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대와 역할은 여전히 존재한다. 며느리는 누구보다 일찍 음식을 준비하고, 일어나 상을 차리고, 식사 뒤에 설거지하고 그릇을 정리한다. 그 모든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질 때, 당연한 듯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수고가 잊혀지기 쉽다.
그 이후로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빨강 네일 컬러’가 생각난다. 조용히 반짝이는 빨강 손톱처럼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작고 단단한 다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