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떨구고 비로소 짙어진 향기
영하의 날씨가 되면 밖에 두었던 화분을 집안에 들여놓는다. 봄, 여름, 가을을 따뜻한 햇볕과 함께 지내던 치자나무는 마음 놓고 무성하게 자란다. 가지를 뻗고, 잎을 펼치고, 한여름엔 하얀 꽃을 피워 온 집 안에 향기를 채운다.
하지만 겨울에 들여놓은 화분은 다르다. 잎을 조금씩 떨군다. 처음엔 걱정이 됐다. 혹시 죽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나무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만큼만 남긴다는 걸. 무성했던 가지는 앙상해지고, 풍성했던 잎은 듬성해진다. 그래도 살아남는다. 근근이 생명을 유지한다.
신기한 건, 나무가 어떻게 아는지 봄이 올 때쯤 되면 작은 양의 꽃을 피운다는 점이다. 겨울 내내 잎도 제대로 달지 못하고 간신히 버텨온 나무가 꽃을 피운다. 많지 않다. 한두 송이, 기껏해야 서너 송이. 하지만 그 작은 꽃은 여름의 풍성한 꽃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진한 향을 낸다.
오늘 아침 꽃 한 송이가 피었다. 그 하얀 작은 한 송이가 방 안에 바닐라 향을 가득 채운다. 창문을 열면 날아갈 것 같은, 손을 대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꽃. 하지만 그 향기만큼은 당당하다. 나는 그 꽃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렇게 작아도 괜찮구나. 이렇게 적어도 괜찮구나.
생각해 보면 내 삶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무성하게 자라던 때가 있었다. 바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고, 사람 사이에서 인정받던 시절. 그때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빠르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삶에 뭔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분명 잘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더 채워도 계속 비는 것 같았다.
지금은 아이를 키우며 소소하게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과일을 깎고, 빵을 데우고, 아이를 깨우고, 함께 식사를 한다. 저녁에는 책을 읽고, 재우고, 설거지를 하고, 잠든다. 반복되는 하루.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예전의 화려함과 비교하면 초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에 작은 꽃을 피우고 향기를 피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많지 않아도 괜찮다. 크지 않아도 괜찮다. 겨울 치자나무처럼, 나는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살아간다. 무성하게 자라지 못해도, 풍성하게 피우지 못해도, 이 작은 꽃 하나로 충분하다. 그 향기가 우리 집을 채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이가 웃을 때, 아내와 저녁을 먹을 때, 창밖 새소리를 들을 때. 이런 작은 순간이 내 삶의 꽃이다.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이는 큰 꽃은 아니지만, 우리 집에는 이 향기가 가득하다. 그걸로 된 것 같다. 더 이상 무성해져야 한다는 강박도, 풍성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다. 지금 이대로, 이 작은 꽃 한 송이로 살아간다.
창밖은 여전히 춥다. 하지만 봄은 온다. 치자나무도 알고, 나도 안다. 그때가 되면 다시 잎이 나고, 가지가 자라고, 꽃이 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괜찮다. 작은 꽃 한 송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겨울을 견디며 잎을 떨궈낸 치자나무가 작지만 가장 진한 향기의 꽃을 피우듯,
우리의 삶도 때로는 덜어내고 비워낼 때 비로소 진짜 내 향기를 찾게 됩니다.
무성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오늘엔 이미 충분한 향기가 배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