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보다 나를 귀하게 여기기
결혼 전, 나는 성과급이나 명절 상여금으로 구입한 명품 가방 한두 개를 번갈아 들고 출근하곤 했다.
가죽 가방이다 보니 무게가 나가고 딱딱해서 어깨에 부담이 되었다.
책 한 권만 넣어도 큰 짐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비가 오면 가방을 우산 대신 머리 위에 얹고 다니기는커녕, 품 안에 넣고 비 한 방울 안 맞게 하려고 조바심을 냈다.
그런 불편함이 대수랴. 비싸고 예쁜 가방이니 부지런히 '모시고' 다녔다.
결혼 후, 소비를 더 신중하게 바라보게 되면서,
비싼 물건을 들고 다니는 만족감보다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명품 가방은 옷장에 고이 모셔두고,
이것저것 넣어도 공간이 모자라지 않는 가벼운 재질의 중저가 가방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엔 그것마저 불편해져, 천 재질의 백팩으로 바꿨고,
마흔이 된 요즘은 폴리에스터 소재의 손바닥만 한 크로스백과 태블릿 파우치만 들고 다닌다.
백팩 속 물건들 중 대부분은 하루에 한 번도 꺼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분증과 카드, 현금은 모두 핸드폰 하나로 대체되었고,
빠뜻한 일정 속엔 화장품을 꺼낼 시간조차 없었다.
펜, 메모지, 간식거리도 여전히 그대로.
그래서 ‘최소한의 최소한’만 소지하자는 마음으로 가장 가볍고 작은 가방을 선택했다.
그리고 글 쓰는 데 필요한 태블릿, 블루투스 키보드, 보조배터리, 책 한 권만 넣은 파우치만 곁들이면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짐은 없었다.
명품 가방을 상전처럼 모시지 않기로 한 후,
나는 세상에 ‘귀한’ 물건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서 덮어본 구스이불이 참 마음에 들었지만,
세탁기에 돌리지도 못하고 햇볕에 말려가며 관리해야 한다는 말에 생각을 접었다.
나는 이불을 모시고 살고 싶지 않다.
2주일에 한 번씩 세탁기에 표준 모드로 돌리고, 건조기에 돌려서 뜨끈하게 말리고 싶다.
그러다 금방 낡아버리더라도 상관없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사용하는 내내 깨끗하고 편하게 사용했으니 미련 없이 보내준다.
속옷을 포함한 모든 옷도 그런 기준으로 고른다.
막 입고, 막 빨고, 막 말려도 괜찮은 옷. 낡아버려도 아쉽지 않은 가격의 옷.
‘귀하게 모실’ 물건이 줄어드니,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맞벌이 워킹맘으로 사는 지금,
집안일에 쓰는 에너지를 줄이는 건 내 삶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건보다 중요한 건 결국 내 시간, 내 에너지, 그리고 나라는 사람 그 자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