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부동산 매매 후, 나는 경기장 안의 선수가 되었다. 경기장 밖에서 대충 보며 이러쿵저러쿵할 때와는 딴판인 세상이었다. 첫 집을 매매했을 때에는 ‘대출 없이 살(live) 수 있는 집이 일 순위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으로 우리는 ‘대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대출 조심하라’는 경고성 조언을 들으며 자란 세대이다. 빚을 낸다는 것이 궁핍의 상징이자, 인생을 리스크로 몰고 가는 행위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80-90년대 경제 성장기에 경제활동을 했던 이들은, 그때의 고금리 상황을 기억한다. 연이자 10%대의 예금도 흔했던 시절이니, 돈을 모으기도 쉽고, 그만큼 대출을 받았을 때 높은 이자로 고생하기도 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금리의 시대이다. 양적 긴장으로 금리가 올라 주식 시장이 휘청거리고 경기가 위축되는 시기도 있지만, 그래봤자 4-7% 대의 수준이다.
자본주의는 인플레이션의 힘으로 굴러간다. 통화량의 총량이 늘어나야 굴러가는 세계이다. 그 말은, 통화를 제어하는 중앙 기관에서는 계속해서 돈을 찍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상황에 맞춰 속도를 조절할 뿐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는 이상, 물가는 계속 오르고 화폐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기 마련이다. 과거의 자장면, 소주, 치킨 가격을 떠올려 보라.
인플레이션은 물건을 살 때만 적용되는 조건이 아니다. 대출 세계에도 적용된다. 현재 기준으로 30년 만기의 주택담보대출 5억을 받았다고 해보자. 연봉 5천만 원을 받는 입장에서 5억의 대출은 큰 부담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안에서 나의 대출 5억은 서서히 ‘녹는다’. 해가 지날수록 5억의 무게감은 작아진다. 반면에 내가 구입한 자산의 가치는 올라간다. 물가가 오르고,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의 기본 작동 원리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대출에만 의존해 구입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정해준 기준을 따르면 편하다. 제도적으로 지나친 대출을 막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바로 DSR이다. 2025년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실행 시 스트레스 DSR이 시행 중이며, 40%의 한도 안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부부의 1년 전체 소득 중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 쓰이는 금액의 비율이 40%를 넘을 수 없다는 조건이다. ‘DSR 계산기’를 검색하면 자신의 수입에 맞는 대출 금액을 손쉽게 계산해 볼 수 있다. 법적으로는 40% 한도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나는 보통 30-35% 한도 안에서 대출을 실행한다.
가용할 수 있는 현금과 DSR 30-40% 수준의 대출금을 계산하는 것이 내 집 마련의 첫 단계이다. 이 예산 한도에 가장 근접한 후보지를 몇 군데 추려서 깊이 공부하고 임장 하면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동네가 다르다. 외국에서 온 친구를 하루 동안 가이드한다면, 어느 동네에 데려가겠는가? 30억짜리 로또에 당첨된다면 어느 지역으로 이사하고 싶은가? 1년 동안 재택근무를 한다면 어느 동네에 머무르고 싶은가? - 답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가끔 한강 공원 근처의 핫플 동네에 마실을 나간다. 한강도 가깝고, 먹거리가 모인 시장도 매력적이다. 주거지 안에 띄엄띄엄 힙한 편집샵도 보이고, 갤러리도 보이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을 사가는 베이커리도 있다. 이 동네를 거닐면서 나는 남편과 이런 대화를 했다.
“싱글일 때 이런 동네에 살면 참 좋겠다.”
“자취할 때는 최고지.”
“근데 돈은 못 모으겠다.”
“돈 쓰기 최적이지. 핫플이라고 맨날 친구들도 놀러 오고 그럴 텐데.”
“이런 데는 가끔 한 번씩 오는 게 좋다.”
삶의 장(場)이 달라지면서,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결혼은 전과 후를 확연히 가르는 중대한 이벤트이다. 싱글일 때는 삶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를 추구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보금자리를 구할 때에는 외식과 배달의 용이성이 중요하다. 사교 활동에 유리한 업장들이 근거리에 있는 것도 좋다.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 삶의 질을 올리고,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니 사람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면 좋다. 위에서 언급한 동네가 딱이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늘어나면 같은 동네에 대한 평가가 바뀐다. 외지인으로 늘 붐비는 동네다 보니 어수선하다. 차도 많고, 소음도 많다. 주말이 지나면 쓰레기가 한가득이다. 술과 담배가 담겨있는 동네 풍경이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젊은이들의 템포로 흘러가는 동네이니 어린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힙한 인테리어의 가게들에 앉아 있기가 불편하다. 촌스럽더라도 아이들이 편하게 앉고 떨어뜨려도 괜찮은 못생긴 플라스틱 컵이 구비되어 있는 가게가 필요하다. 놀이터,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이 필요하다.
‘싱글의 눈’과 ‘부모의 눈’은 분명히 다르다. 삶의 단계가 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파트 매매를 할 때는 ‘부모의 눈’으로 보는 것이 유리하다. 내가 부모가 아니더라도 ‘부모의 눈’을 장착해야 한다.
부동산 뉴스에서 흔하게 언급되는 아파트 단지들을 떠올려 보라. 잠실엘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헬리오시티 같은 단지들 말이다. 집값 상승과 하락의 바로미터이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자산이다. 이 단지들의 특징은 위에서 언급한 동네의 키워드들을 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외지인으로 붐비지 않는 안정된 느낌이다. 소음이 많지 않다. 술, 담배, 유흥이 담겨있지 않은 풍경이다. 어린아이들이 많다. 가게에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다.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편의 시설과 학원이 즐비하다.
조금 심심할 수는 있어도, 가족들이 살기 좋은 동네는 싱글들에게도 살기 좋은 동네이다. 넓은 수요층을 아우를 수 있는 동네를 눈에 담아야 한다. 게다가 가족이 늘어나면 보금자리에 대한 욕망은 이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폭발하게 된다. 욕망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인다. 아파트를 고를 때만큼은 ‘부모모의 눈’을 장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