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으로 불린 자산
결혼과 그에 딸려 오는 모든 패키지들은 대체적으로 인생을 뒤집는 변화이자 도전이다. 나도 요즘 유행하는 비혼주의자였더라면 어땠을까. 혼자만의 자유를 평생 누리며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해했을까? 아마 일정 부분은 그런 면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11년 전의 내가 그런 결정을 했었더라면,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만은 지금과 같은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전세라는 것을 살아 보면서 세입자와 집주인의 진짜 관계를 깨우쳤다. 집주인에게 세입자는, 몇 억 원을 무상으로 빌려주는 양질의 대출처이다. 집주인의 신용도 묻지 않고, 상환을 독촉하지도 않고, 게다가 정서적으로는 묘하게 권력자의 위치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선사한다. 여기서 2년간 벌어서 집주인 좋은 일만 시켜주는 쳇바퀴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첫째 아이가 생겼을 때에는 그 집주인 좋은 일을 그만두고자 친정 부모님의 건물에 세를 들어갔다. 부모님의 거의 유일한 재산인 상가 건물의 한 층을 터서 대공사를 하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전세계약서를 썼다. (부모 자식 간에도 문서는 중요하다.) 그곳에서 낭비되는 주택 자금 없이 알뜰하게 돈을 모으고, 힘들었던 신생아 육아까지 잘 마치면서도, 체감되는 불편함이 있었다.
첫째로, 아이를 데리고 2~4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겠다. 집을 사자. 하지만 부동산의 ㅂ도 모르던 시절, 그저 막연히 최대한 대출 없이 예산에 맞게 사자라는 마음으로 경기도 김포의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 (지나고 보면 이 일은 50점짜리 결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잦은 외국 근무와 신생아 육아의 어려움으로 친정집에 좀 더 눌러앉기로 결정하고, 그 아파트는 입주 시기에 전세를 돌렸다.
둘째로, 아이 키우기에는 아파트가 좋다. 부모님은 계속 같은 건물에 머무르기를 바라셨지만, 친정 최근접의 막강한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파트로 옮길 결심을 했다. 병원 한 번만 가려해도 기저귀, 젖병, 유모차, 달래기 위한 장난감 등등 짐이 한 트럭이다. 유모차 끌기 좋은 엘리베이터와 안전하게 포장된 인도가 절실했다. 유모차 한 바퀴 끌며 낮잠 재울 수 있는 산책로도 소중하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이왕이면 차가 다니지 않는 산책로와 정원을 바라게 되었고, 적어도 인도와 차도가 분명하게 분리된 길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놀이터도 필수가 될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친정 근처) 아파트로 옮겨야겠다.
이 두 가지 변화는 우리의 자산을 일구는데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평생을 전세로 살 생각으로 결혼했던 내가, 내 집 마련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육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주택의 형태를 체감하게 되었다. 아파트.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아이를 갖지 않았더라면, 나는 한동안을 친정집 방 한 칸을 경계로 살았을 것이다. 몇 년을 번 돈으로 자취방 한 칸을 구해서 나갈 결심은 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피스텔이나 원룸, 또는 투룸 전세 정도의 경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상품'으로서의 주택의 가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선호되는 주택 형태, 자산을 일구는 도구로서의 집에 대해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다 로또라도 당첨되어 집을 산다 하더라도,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내가 어떤 집을 골랐을까? 초품아, 학군, 입지 등 더블로 상승한 아파트들이 가진 메리트를 고려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싱글라이프를 즐기는데 가장 주안점을 두었을 것이다.
함께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리고 함께해야 더 멀리 가고자 마음을 먹을 수 있다.
ps. 물론 경제적 자유를 이룬 싱글들도 있다. 나는 11년 전 결혼했고, 그때에는 미국주식도, ETF도, 비트코인도 관련자들(혹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귀한 정보였다. 만약 그 시절에 그런 재테크에 익숙한 사람이었다면, 혼자 살든 같이 살든 부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에 관해서만은, 싱글들이 캐치하기 어려운, 당사자가 되어야만 눈에 보이는 포인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