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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하루 onharuoff Feb 14. 2022

잊혀져가지만 간직하고 싶은 것

엄마표 약식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준 음식 중 기억을 떠올리면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나에게는 시루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 속의 뽀얀 백설기 떡과 달콤한 약식이다.


오빠 생일떡으로 직접 집에서 해준 백설기는 어린 마음에 항상 설레였다. 새하얗게 모습을 드러낸 백설기는 사먹는 떡과는 달랐다. 약식은 정월대보름 먹을 수 있었는데, 보통 아버지의 음력 생일과 겹칠 때가 많아서 아버지 생일때 먹는 음식이었다. 약식은 운 좋은 해에는 추석에 한 번더 먹을 수 있긴 해지만 매년 엄마표 약식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백설기는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먹었었지만 다행히 약식은 몇 년 전까지 매해 집에서 해 먹었었다. 한 번 할 때 항상 많이 해서 냉동실에 보관한 뒤 몇 달간은 아침 식사로 저녁에 간편하게 먹는 식사가 되었다.

약식 또 그리운 음식이 돼버린 것은 엄마의 손가락에 퇴행성 관절염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엄마가 밤을 사 오셨다.

퇴근하고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밤을 까고 계신 거였다. ​​밤은 겉껍질 까고, 속껍질까지 두번의 손이 간다. 물론 요즘 기계로 깐밤이 나오지만 잘 알다시피, 속살을 너무 깎아서 집에서 속껍질을 살살 까야하는 바로 그 밤을 사오셨다. 얼른 손 씻고 식탁에 앉아서 칼을 빼앗아 까기 시작했다.


“약식 해볼까하고.”

“그래 하자. 밤은 내가 깔 테니깐 엄마는 제발 나 없을 때 하지 말고.”

평소 같으면 손가락 아프게 왜 이런 거 하냐고 잔소리를 할 내가 오히려 하자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왜냐하면 속마음은 신이 났다. 먹고는 싶었지만 하자고 이야기 하지 못했던 약식을 다시 먹을 수 있다니.


요즘 전기밥솥이나 압력솥으로 할 수 있는 간편한 약식하는 법도 있지만 엄마는 찌는 형태의 방식으로만 한다. 물론 오래전 전기밥솥에 해본 적이 있는데, 고슬고슬 쫀득한 약식의 맛을 느낄 수가 없어서 두번 찌는 형태로만 만든다.


어렸을 때부터 약식하는 법은 봐왔기 때문에 어떻게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약식만드는 법을 익히기 위해 하나하나 할 때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면서 만드는 법을 익혔다. 어쩌면 엄마표 약식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깐 다음에는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약식의 기본 재료는 찹쌀, 간장, 흑설탕, 그리고 들어갈 각종 재료인 밤, 대추, 건포도이다. 예전에는 은행도 직접 따서 까서 넣기 까지 했는데, 이제는 집 주변에 은행나무가 없어서 별도 넣지 않았고, 잣은 가족들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여서 넣지 않았다. ​


먼저 찹쌀을 전날 깨끗하게 씻어서 4~5시간 불린 뒤에 채에서 물을 빼준다. 찜통에 물을 넣고 면 보자기를 깐다음에 찹쌀을 넣고 1차 찐다. 강불에서 대략 40분 정도 찌니 다 익었다. 찌고 나니 아주 쫀득하고 고슬고슬한 밥이 되었다. 이 밥만 먹어도 맛있다. 이제 여기에 속재료인 밤, 대추, 건포도를 넣는다.


밤이 큰 편이여서 4등분을하고, 대추는 전날 씨를 빼고 잘라놓았다. 아주 넉넉하게 충분하게 준비한다. 이 재료들을 넣은 뒤, 간장과 흑설탕으로 간을 맞추고, 약식의 브라운 색상을 낸다. 흑설탕이 아니고 일반 설탕을 사용해도 좋지만 그러면 나중에 약식의 색이 별로 안나므로 이렇게 흑설탕을 사용한다. 간장은 물을 좀 타서  짠맛을 줄인다. 그렇게 해서 섞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찹쌀이 뭉쳐서 덩어리가 생기지 않게 계속 비벼주어야 한다. 간장과 흑설탕이 색깔을 내기때문에 덩어리가 생기면 그 안은 하얀색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이때 양을 얼마나 넣어요라고 묻는다면 단맛을 좋아하면 설탕은  많이 넣으라는  정도이다. 재료, 간장, 설탕이 섞인 찹쌀을 먹어보면서 간을 맞춰야 한다(엄마표 음식이므로).


이렇게 잘 섞은 뒤에 1시간 정도 식혀준다. 간이 배어들게 두는데, 이때 너무 오래 놔두면 말라서 2차 찌고 나서도 좀 딱딱해질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겉이 말라서 딱딱한 느낌이 들면 2차 찜통에 넣기 전 물을 약간씩 뿌려진뒤 1차 처럼 찌면 괜찮다.

밤이 익으면 이제 엄마표 약식은 완성이다.

엄마가 하는 음식  달달함이 강조되는 두가지가 있는데, 바로 콩국수와 약식이다. 그래서 우리집 약식은 달달하다.


떡집에 가서도 사먹을 수 있는 것이 약식이지만 집에서 만들어 주신 약식에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담겨있다. 맞벌이를 하셨기에 바깥일을 하면서도 집안 일까지 다 하셨기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동동거리면 사셨지만, 자식들에게는 시간이 날 때는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 주실려 했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당연히 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었고, 그 음식들이 언젠가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되었다.

한해 한해 오래 걷는 것을 힘들어하시고, 손가락이 아파오고, 조금만 무게가 있는 것을 들게 되면 휘청거리시면서, 직접 하시던 것들이 다른 것들도 바뀌어가고 있다.

점점  하실  있는 것들은 사라질 것이고,  사라진 것들을 그리워하겠지. 엄마의 맛을 내 손으로라도 기억해두어야지.








블로그와 함께 올리는 글이지만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글을 복사해서 똑같이 올리지 않고, 다시 쓰면서 올리기 때문에 글이 수정되어서 올라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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