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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못난 모습까지 사랑해 달라는 헛소리

by 온호류



부부사이에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 존중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상대방에 대한 '감사함'으로부터 나온다고.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이 '감사한 마음'이 참 금방 익숙해지고 잊혀진다.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해지고, 내가 못난 모습을 보여도 배우자가 그것을 받아주는 것에 대해 처음엔 부끄러워도 하고, 고마워도 하지만 이 또한 점점 익숙해진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부당거래의 명대사는 부부사이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다. 배우자의 호의와 헌신이 어느 순간 당연한 권리처럼 돼버리는 것은, 야식을 먹으며 꽁냥꽁냥 신혼생활을 즐기다가 어느 날 거울에서 두 턱에 포동포동한 낯선 여자를 보고 흠칫 놀라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새 이미 변해 있는 거였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고마움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서로에 대한 약간의 어려움, 불편함, 그리고 이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즉 적당한 거리감과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런 은근한 긴장감이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돕는 듯하다. 지인들한테는 화가 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서 가족한테만 유독 짜증이 쉬운 까닭이 이런 어려움과 긴장감이 없기 때문도 있을 거다.


나와 (전)남편 사이의 거리감과 긴장감은 제로에 가까웠다. 우린 너무 친했고, 너무 스스럼없었고, 너무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나를 자기와 지나치게 동일시했다.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 했고, 내가 남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했다. 부부라면 어느 정도 서로를 동일시하게 되는 건 있지만 둘의 심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 버리면 소중히 대접해야 하는 손님이 아닌 막 대해도 문제없는 가족이 돼버리는 거였다.


이 사람을 잃는 게 두려워야 함부로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있어야 기분 내키는 대로 굴지 않고 예의를 갖출 수 있다. 회사에서 성격 더러운 직장 상사의 모욕을 참아낼 수 있는 이유는 회사에서 잘리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하면 상대가 떠날 수도 있다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어야 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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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라면 나의 못난 모습도 다 사랑해 주고, 받아들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자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배우자는 나의 단점도 감싸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나의 못난 모습은 배우자에게도 보여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보여주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끝까지 안 보여주려 노력하고, 다신 보여주지 않도록 계속 마음을 써야 하는 거였다. "이런 모습까지 사랑해 줘!"라고 하는 건 억지다. 나는 그럼 내 배우자의 얼마나 못난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나? 화난다고 욕을 하고 물건을 때려 부수는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나? 자기도 안 그러고 싶은데 화나면 어쩔 수 없다고, 이런 모습도 사랑해 달라고 하면 할 수 있나?


배우자의 안 좋은 모습까지 포용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한계는 늘 존재한다.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자꾸 나쁜 모습을 보인다면 언젠가 그 한계에 도달할 수도 있는 거다. 반복할 때마다 상대방이 떠나갈 수 있도록 돌다리를 하나씩 놓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배우자의 호의를 권리처럼 여기고 계속 함부로 대하면 언젠가 내가 남편을 떠날 수밖에 없던 것처럼 돌다리를 건너 당신에게 안녕을 고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결혼해서 같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연애 때는 보지여주지 않았던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일부러 숨겨온 거 일수도, 본인도 몰랐던 미숙함이 나오는 거일 수도 있다. 여기서 배우자가 그 미숙함을 감싸 안아 주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힘이자 숭고한 희생정신이다. 이에 대한 감사함과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면 진즉에 이혼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자를 감정 쓰레기통이나 호구 취급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모습이 나도 싫은데, 내 배우자도 싫다고 한다면 '이 모습도 사랑해 줘!'가 아니라 이 악물고 고치는 게 맞다. 배우자가 한두 번 받아준다고, 혹은 말 안 하고 넘어가 준다고 그냥 방치하는 것이 바로 배우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못난 모습을 최대한 숨기고 안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자 존중이라는 것을 나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을 하찮게 대하면, 나의 안 좋은 모습을 자꾸 보여주면 언제가 날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이 서로를 더 감사히 여기고 더 소중히 하게끔 만드는 거였다.



소중한 이가 아침에 나갔던 문으로 매일 돌아오는 것.
그건 매일의 기적이었네

폭싹 속았수다 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 이 또한 기적임에 분명하다. 아쉽게도 나는 과거에 우리의 결혼생활을, 남편이 내 옆에 있어주는 것을 기적처럼 생각하고 감사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결혼생활은 점점 불행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 기적을 선물해 준 배우자를 귀한 손님처럼 조금은 어렵게, 행여나 나에게 실망해서 떠나버리진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행동하고 대접해야 '존중'의 태도를 유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존댓말을 쓰거나, 평소 말을 조심스레 하고, 노크를 하는 것,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단 부탁하는 것 등 하나하나 귀한 손님을 모시듯 배우자를 대한다면 관계의 오염 없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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