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동생에게 청첩장을 받은 날, 식사 후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실제로 했던 얘기들이다. 공교롭게도 예비 신랑이 동생과 동갑인데,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하지만 둘이 자주 싸웠던 얘기를 들은 터라 괜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동갑인 부부가 모두 자주 싸우거나 이혼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동갑이었고, 보통은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에 비해 서로 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거 같다.
동생이 행복하게, 현명하게 잘 싸우며 사이좋게 지냈음 하는 마음에 과거를 돌아보며 전 남편한테 가장 미안하고 스스로 가장 현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내 행동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왔다. 너는 절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며.
내가 전 남편에게 가장 미안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이다.
여기서의 말은 잔소리, 지적, 옳은 말, 맞는 말 등 상대방이 들었을 때 유쾌하지 않을 모든 예쁘지 않은 말을 뜻한다. 기분 나쁠 수 있는 말도 애교와 부탁으로 포장해 듣기 좋게 말하는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런 능력 또한 부족했다. 이전 글에서도 강조했든 예쁘게 말하는 것은 결혼생활에 있어 너무 중요하고 꼭 필요한 능력인데, 나는 이러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도 관계가 틀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무래도 동갑이다 보니 경제적 수준, 정신연령, 상황 대처능력 등 여러 면에서 비슷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내가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결혼 초 남편이 화를 참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많이 보여서 남편을 아들처럼 생각하게 돼버려서 더 그랬던 거 같다. 꼭 동갑이 아니어도 일반적으로 남자라는 동물이 여자보다 쉽게 욱하고, 승부욕이 강하고, 게임을 좋아하고,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등 어린아이 같은 경향이 있다 보니 여자입장에선 보기에 못마땅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이 보일 때 잔소리하고, 지적하는 것이 과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까?
누군가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예의 없는' 행동이다. 돈을 받고 일하는 회사에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때나 지적을 받는 거고, 회사라 할지라도 같은 팀 동료의 업무 방식이나, 생활습관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함부로 지적하진 않는다. 업무적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 얘기를 하겠지만, 그 조차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춰서 한다.
하지만 직장 동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사랑하는 배우자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부부 사이에선 이 예의 없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다. 직장 동료에게 얘기하는 것만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항인데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잔소리를 하고 지적한다.
잔소리는 대중적으로 다소 귀엽게 미화되어 있다. '애정이 담긴 조언' 혹은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 가볍게 오가는 '걱정이 담긴 말'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엄연히 뜯어보면 잔소리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상대방이 못 미덥고, 못 마땅해서 하게 되는 참견이다.
남자라는 동물은 본능적으로 '서열'에 민감하고, 아내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심적으로 안정이 되고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있는 아내로부터 존경이 아닌 무시(잔소리)를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처음엔 괜찮을 수 있어도 점점 짜증이 올라오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즉 행복할 수가 없다. 물론 세상에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잔소리란 건 여자보다 남자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듯하다.
나는 이 부분을 많이 간과했다. 내가 하는 말이 '맞는 말, 옳은 말'이라는 이유로 남편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잔소리를 남발했다. 사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은 '맞는 말'이다. 살 빼라는 얘기는 뚱뚱한 사람이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쁜 거지 날씬한 사람한테 살 빼라 그래봤자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는 남편이 개선해야 할 점, 해야 할 공부, 하면 안 될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했다. 남편은 그런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알게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을 거고, 자존감이 낮아졌을 거다. 이 부분이 내가 가장 미안하고, 후회하는 나의 실수이고 과오다.
결과적으로 보면 잔소리를 해서 개선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남편의 기분만 상했고, 우리의 관계만 나빠졌다.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그냥 조용히 기다려 줄걸,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줄걸,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하지만 애교 있게 부탁할걸, 실수해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줄걸, 잔소리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도 그냥 참을걸…. 나는 왜 그리 쉽게 모든 것을 말로 뱉어버렸을까?
상대방의 행동으로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대화로 잘 풀어내야 하는 게 맞지만, 대화를 하는 것과 잔소리를 하는 것의 차이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대화는 내가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왜 힘든지 알려주는 것이고, 잔소리는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거다. 누군가 나의 행동을 언짢아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할 때 기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우자에게 '잔소리'가 하고 싶다면 말하기 전에 두 번, 세 번,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저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게 나의 짜증을 없애기 위한 건지, 정말 배우자를 위하는 건지. 배우자의 발전을 위해서 얘기해야 하는 게 맞다면, 본인이 원치 않는 발전은 진정으로 누굴 위한 발전인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진짜 상대방을 위하는 것은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에 부족함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못하고 강아지는 쉽게 해내는 것이 있다.
바로 입을 다물고 그저 옆을 지켜주는 것. 기다려주는 것.
이게 가장 어렵고도 힘들다는 것을 결혼생활을 하며 깨달았다. 하지만 강아지는 그 어려운 걸 본의 아니게
너무나도 쉽게 해낸다.
강아지는 사람처럼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저 무한한 신뢰의 눈빛과 애정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나도 경태에게는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거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미소 짓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마땅히 잔소리를 들을만한 상황에서도 아무 말 않고 날 믿어주는 배우자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려동물이 그러하는 것처럼 조용히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멋지고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