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에 올라온 일정 취소 문자

나는 이미 50분째 출근 중이었다

by 온화수

카페에 앉아 있다.


커피는 이미 반쯤 식었고, 노트북 화면에 적힌 문장은 아직 뜨겁다.


조금 전까지 헛헛했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풀어두고, 잠깐 쉬었다가 저녁엔 다시 출근할 예정이다. 야간 근무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접히는 날이다.


3교대 근무를 한다.


주간 근무를 마치고 야간으로 넘어가는 날이면 몸은 이미 다음 날을 계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야간 근무 전에 주간 근무를 시간 외로 더 할 수 있겠냐”는 말이 얹힌다. 그러면 일정은 이렇게 된다. 주간 근무를 하고, 보통의 퇴근 시간 없이 바로 이어서 다음 날 아침까지 야간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외부 활동을 가기로 했다. 파주의 어딘가였다. 겨울이었고, 독감이 한창이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고개가 갸웃해졌다. 이 시기에 굳이? 싶었지만, 이미 결정된 일처럼 보였다.


며칠 전, 쉬는 날에 전화가 왔다. 파주 가는 그날 근무를 추가로 할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알겠다고 했다. 당일 전날에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맞다”는 확신 있는 답을 들었다. 회사 톡방에는 밤늦게까지 인솔자와 인원, 일정이 정리되어 올라왔다. 계획은 살아 있었고, 나는 그 계획에 몸을 맞췄다.


다음 날 나는 원래 9시 출근이었지만, 시간 외 근무라 10시까지 오면 된다고 했다. 10시에 출발한다는 말도 분명히 들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자차로 50분 정도 걸린다. 준비를 마치고 9시에 집을 나섰다.


9시 50분에 도착했을 때 회사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그래도 출근하면 출근했다고 톡방에 남겨야 하기에, 그제야 톡방을 열었다.


9시.


“오늘 일정은 한파로 취소되었습니다. 다음 주로 연기되었습니다.”


한 줄이었다.


톡방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미 준비를 마치고, 내 차로 이동 중인 사람에게는 전화 한 통쯤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최소한 그 정도는 배려 이전에, 예의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욕하는 일이 결국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런 일은 반복된다. 하루 전날만 기온을 살폈어도 예측할 수 있었을 일이다. 안 되겠으면 그때 취소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속과 행사는 자주 잡힌다. 그리고 상사의 변덕스러운 결정으로 자주, 갑자기 취소된다. 그런 갑작스러운 일정 취소를 상대에게 알려야 하는 건 우리 몫이다. 대개 상대쪽에선 “지금 말씀해주시면 어떡하느냐, 다 준비해놓았는데…” 이렇게 토로하고, 우리는 연신 죄송하다고 해야 한다.


"그걸 왜 아직 안 하고 있어요? 회의 때 말했잖아요!"


이제 회의에서 뭔가를 하자고 하면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동안 지켜본다. 왜냐하면 곧 생각이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실행하면 며칠 뒤 그렇게 안 하기로 했다고 하며 아예 없던 일이 되거나. 몇 번 겪고 나면 사람은 스스로 속도를 늦춘다. 그게 가장 덜 다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상사는 늘 예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끔 궁금해진다.


말로 강조하는 예의와, 사람의 시간과 몸을 다루는 예의는 왜 이렇게 다른지.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자차로 왕복 두 시간을 운전했고, 지원되지 않는 기름값을 쓰고, 몸을 한 번 헛되이 예열한 채 돌아왔다.


지금은 이렇게 카페에 앉아 있다.


이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나니, 마음이 아주 조금 가라앉는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저녁에 출근할 것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고, 야간은 예정대로 돌아간다.


예의라는 건 거창한 말이 아니라, 취소를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걸어오는 전화 한 통 같은 거라는 생각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