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하동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오롯이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다. 새롭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낱낱이 눈에 담으면서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이른 시간 출근하는 사람들 틈으로 여행 가방을 들고 나는 그렇게 서 있었다.
모두들 어딘가로 바쁘게 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지난 봄 하동 여행 때 들렀던 구례구역에 도착하자 나의 마음은 두려우면서도 다시 설레이기 시작한다.
기차는 곧 역을 떠나고 산등성이는 낙타 등처럼 부드럽게 낮아지고 엷은 은빛 비단길 같은 시냇물이 나타났다 부끄러운 듯 모습을 감춘다.
뭔가 내 인생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사람을 매우 지치게 하는 반복의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이때의 반복이라는 건 뭐고, 변화는 어떻게 가능하고, 어떻게 우리는 새로운 결단을 내려, 새로운 모험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창조자와 새로운 모험가는 애초부터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늘 똑같이 이렇게 살고 또 이렇게 되어버리더라, 이런 걸까요?
김연숙, 《 나,참 쓸모있는 인간》, 천년의상상(2018), p.143
계속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삶. 호기롭게 떠났다가도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온다. 나는 내 삶의 반복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깨달았을 땐 나는 언제나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자꾸 원점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어."
난 언젠가 네게 그런 말을 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자꾸만 되돌아와 내 마음에 맺히는 것, 그것은 박경리 선생님이 말한 그 한(恨)이었을까.
한(恨)
육신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일쑤이다
떠났다가도 돌아와서
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때론 슬프게 흐느끼고
때론 분노로 떨게 하고
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마로니에북스(2008), p.106
9:50 KTX 구례구역을 지나 하동역으로
순천역에 도착했다. 하동으로 가는 무궁화호로 갈아타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9분 차이로 환승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었는데, 막상 역에 와보니 충분히 가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3번 부전행 승강장으로 내려가면 된다.
녹두죽과 열무김치
관광안내소에서 '청춘창고'를 추천해주었지만, 미리 봐두었던 '민속녹두팥죽'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바로 근처 '역전팥죽' 집에 왔다. 좁은 가게가 이미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어르신들이 편하게 오고 가는 사랑방 같은 곳.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 하시면서 정겹게 친구분에게 어여 건너오라고 전화를 거신다. 나는 문 옆에 캐리어 가방을 두고 차마 들어서지는 못하고 머뭇머뭇 안쪽을 기웃거렸다. 한 5분쯤 서있었을까, 혼자서 주문받느라 바쁘던 주인 할머니께서 그제야 알아차리고 부엌에서 "뭐시여, 들어오려고?" 하신다. 고개를 끄덕이자 손님으로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순천엔 도둑놈들이 많아서 안쪽에 들여놔야 돼"하며 짐을 들어주시길래 그제야 긴장을 풀고 웃으며 "순천은 사람 살기 좋은 곳 아닌가요?" 했는데 역시나 내 농담엔 아무도 안 웃는다. 할아버지는 짐을 왼쪽 좌식 마룻바닥 구석에 놓아주신 후, 같이 온 세 분의 할머니들과 콩국수를 시키신다.
녹두죽을 주문하자 주인 할머니께서 "녹두죽은 쌀 들어가는 거, 그르케 해줘?" 하신다. 참 정직한 곳이다. 따끈한 녹두죽과 콩나물, 김치, 열무김치가 같이 나왔다. 배추김치를 한 입 먹었는데, 그리운 태국 향신료의 향이 난다. 이것이 남도의 김치 맛인가! 한번 더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열무김치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따뜻한 녹두죽 한 스푼에 시원한 열무김치를 한 입 먹으니, 외갓집 할머니댁에 온 기분이다.
기차 시간 때문에 시계를 흘끗거리며 먹고 있는데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시던 할머니 한 분이 "젊은 사람이 시골에 워쩐 일이댜" 하신다.
"하동에 글쓰러 왔어요."하고 이런저런 사정을 말씀드리니 좌식 마룻바닥에 앉아 계신 할머니들도 고개를 돌려 이것저것 질문을 하신다.
그러자 갑자기 옆 탁자에 말없이 앉아 계시던 다소 무뚝뚝해 보였던 할머니께서 역정을 내신다.
"그렇게 자꾸 말 시키면 언제 다 뭇나. 한 숟갈이라도 더 뜨고 가야제."
왠지 다 비워야만 할 것 같아 호호 불어가며 열심히 먹느라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즈음, 주인 할머니께서 슬쩍 다가와 보리차를 더 따라 주신다.
다 먹고 일어서서 녹두죽도 간이 딱 맞고 열무김치도 너무 맛있었다고 하니, 주인 할머니의 입가에 그제야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저 가볼게요. 그럼 다들 건강하세요!" 꾸벅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그려, 또 와."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씀이 따스하게 등을 밀어주고 이마에 맺힌 땀구슬이 바람에 실려가 마음 한구석도 가벼워진다.
우리 민족에게는 한(恨)과 해학(諧謔)의 정서가 있다. 나는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끓여준 녹두죽에서, 할아버지의 장난기 어린 인정(人情)에서 맺힌 것을 풀어내는 기운을 느낀다. 나는 알지 못하는 한, 해학, 신명을 이 분들은 삶으로 알고 계신다. 한 맺힌 것은 웃음으로 풀어내고, 신바람나게 다시 일으켜 꿋꿋이 살아오셨을 것이다. 내 피에 흐르는 것이 무엇인가? 이전 세대가 땀 흘린 것을 한 그릇의 양식으로 받으니 우리가 하나의 강이요, 한 벼의 이삭임을 말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