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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기리상 Sep 01. 2021

먼저 간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가을. 30일 에세이 첫 번째.

 

 네가 세상에 태어난 계절도, 흙으로 돌아간 계절도 가을이었다. 그 가을, 첫 항암을 이겨낸 너는 선글라스에 예쁜 가발을 쓰고, 파란 원피스 차림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아기를 낳은 내 입에 손수 만든 음식을 넣어주고 갔다. 넌 늘 그런 아이였다. 다음 해 가을, 해가 짧아지고 바람이 선선해질 무렵 네가 다시 길고 힘겨운 싸움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의 병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물 콧물 바람을 하던 내 모습이 무색하게, 활짝 웃으며 종알종알 지저귀던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다 쭈뼛거리며 너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나온 게 내내 후회가 된다. 하지만 넌 다시 이겨낼 거라고, 다음엔 안아줄 기회가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떼기 힘든 입으로 통화하자고, 쓰기 힘든 손가락으로 문자하자던 네가, 그날 병원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10년도 50년도 살아낼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의 잔병치레와 복직을 핑계로, 너에게 꼭 내비쳐야 했던 마음을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지냈다.


 네가 스러져 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뒤늦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자처하며 날마다 찾아가 네 볼을 쓰다듬고 어머님을 안아드렸다. 그런 유세를 떨었다. 그러다 너를 보러 가지 못했던 날, 어째서 너는 그날 그렇게 거짓말처럼 떠나가 버린 건지. 네 빈소에서 어른들 모두는 내 딸을, 친구들 모두는 내 절친을 잃었다며 미처 전하지 못한 사랑을 쏟아냈다. 그 절절한 고백들이 나는 너무 아팠다.


 그리고 매 해 가을, 옷깃 안으로 은근히 스며드는 찬 바람을 맞으며 나무 아래 잠든 너를 찾는다. 네게는 뒤늦은 사랑을 고백하고, 너의 나무 주변을 뛰노는 내 아이에게는 순간의 사랑을 고백한다. 너를 통해 또다시 알아간다. 사랑은 마음에서 입으로 순간순간 내뱉어 비워내야 한다. 제때 전하지 못하고 욱여넣은 마음이 후회라는 돌덩이가 되어 나를 더 이상 짓누르지 않도록. 너를 보낸 가을에 또 다시 미련을 남기지 않도록.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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