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한테 졌어요
간만에 비님이 오셨네. 기온이 낮아져도 바람은 찬 기운이 사라져 제법 봄이다. 봄은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 왔다고 봄”에서, 봄비에 꽃이 지고 잎이 푸릇해지면 “올해도 발만 담그고 가나 봄”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푸릇해지면 금방 여름이니까. 이 계절은 마치, 가볍게 소맥을 말다가 흐름 탔다고 소주를 들이붓자마자 테이블에 이마를 꽂는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뭔가 본격적일라치면 훅 가버리고 만다.
나무는 항상 무엇에도 지지 않을 것처럼 꽃을 바락바락 피워내고선 고작 하루 내린 비에 꽃잎을 후두둑 놓아버린다. 날씨는 또 얼마나 변덕스럽게요. 그렇게 짧아지는 계절은 아쉽고, 가는 걸 잡지 못해 이렇게 일장연설이나 내뱉을 수 밖에 없다. 봄은 사실 여름이나 겨울처럼 캐릭터가 확실하진 않지만 그 사이를 열심히 완충하고 있다는 걸 안다. 봄과 가을 같은 애들이 없으면 세상이 너무 극단적이라 혼란스럽겠지. 오늘 반팔입다 내일 패딩입으면 이상하잖아...
그래도 역시 이렇게나 짧으니, 깜빡 단잠에라도 빠지면 봄이 왔다 가는줄도 모르겠다. 크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 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멀어져 봄이야말로 일장춘몽같지만, 결국 그게 봄의 매력이겠지 싶다. 아름다운데 짧기까지 하니 아쉬운 속을 뒤집기엔 이렇게 완벽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어쩌라는건가... 그냥 기승전 봄한테졌어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