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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14. 2022

나도 예쁜 청바지를 입고 싶다

나를 살린 감정노트- 2화


사진=픽사베이


나는 청바지를 입지 못한다. 입자면 구해서 입을 수는 있는데, 다리에 사이즈를 맞추면 허리가 크고 허리에 사이즈를 맞추면 다리가 낀다. 그렇다면 입기 싫어서 안 입는다는 말도 반은 맞다.


한때는 라인이 예쁜 타이트한 청바지를 잘 입고 다녔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2년 즐겨 입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난생처음 밤중에 쥐가 나는가 하면, 일을 하며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허벅지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부딪힌 적도 없는데 멍이 있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다리에 혈관이 비치기 시작했다.

지름이 2~3mm 쯤되는 혈관이 보이는가하면, 보라색 혹은 붉은색의 가는 실핏줄이 여기저기 생겼다.

 

왜 이러지 싶어 다리에 혈관이 생기는 질병을 검색해보았더니 '하지정맥류'라고 불렸다.



의학기사에서 하지정맥류를 방치하면 피부 경화, 정맥염, 궤양, 괴사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문장을 보자 겁이 났다. 심해지면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알려진 원인으로는 호르몬 변화, 유전적 요인, 오래 서있거나 앉아있는 자세, 다리 꼬는 습관, 흡연, 음주, 과체중, 운동부족 등 참 다양했다.


여기에 꽉 끼는 옷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순간 청바지와 레깅스를 즐겨 입었던 게 떠올랐다.


사진=픽사베이


안 되겠다 싶어 청바지를 개서 치워두고, 통이 여유가 있는 바지를 꺼냈다. 옷을 바꾸자 증상이 덜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오래 앉아 있을 경우 콕콕 찌르는 통증은 그대로였고, 핏줄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쉽게 부어 양말 자국이 났다.


아무래도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서 병원을 찾았다. 9년 전쯤 일이다. 내 나이 또래 중에 이런 증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겁이 났다.  아직 30대 초반인데 혈관 질환을 너무 일찍 겪는 게 아닐까?

  

내 진료 순서가 되었다. 외관 핏줄이 어느 정도 되는지 체크를 받고 종아리 부분에 초음파 검사를 했다.


초음파를 본 의사 선생님은 다리 내부의 판막이 손상되어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심장 쪽으로 보내야 할 피가 올라가지 못하고 다리에 고여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단다.


판막이 고장났다, 판막이 손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딘가 염증이 생겼다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밸브 같은 막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더군다나 그게 고장이 났다니.


이미 생긴 혈관은 심해지면 심해지지 저절로 없어지긴 힘들다는 말씀도 들었다.

판막 역시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려워서 현재의 의학으로서는 단순히 혈관을 막는 치료가 최선인 듯했다.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닌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봐야할까.


2~3차례 였을까. 주사 치료를 받았다. 다리에 약물을 주입해서 불필요하게 뻗어나간 혈관 길을 막는 것이다.


주사를 맞으면 다리 전체를 붕대로 타이트하게 칭칭 감은 채로 집으로 가야 하며, 이런 상태를 3시간가량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1주일 동안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 시간 동안 의료용 압박 스타킹을 착용해야 한다. 이 불편하고 번거로운 치료가 처음 겪는 내게 참 생경했고 기분이 이상했다.


이후 증상이 개선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단지 미관상 전보다 나아진 것일 뿐 새로 생겨나는 혈관을 막을 수 있는 치료도, 다리가 무겁고 붓는 증상도 완화시켜주는 치료도 아니었던 것.


나는 옷차림을 바꾸는 노력과 더불어 장시간 오래 앉아있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다리가 쉽게 무거워졌고 아파서 어떤 날은 30분을 앉아 있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허벅지가 따끔따끔 거리는 증상이 금세 찾아와서 자리를 뜨지 못할 땐 의자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기라도 했다. 장시간 여행은 곤혹스러웠고, 몇 시간씩 앉아 있어야 하는 회사 업무 중간중간에는 스트레칭을 해주어야 버틸 만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의원에 갈 일이 있어서 한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하지정맥류는 양의학에서 쓰는 용어이고 한의학에는 그런 병명이 없다고 했다. 그 비슷한 병명도 없다는 말씀이셨다. 대신 한의학에서는 그런 증상을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관점으로 본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의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하고  켜졌다.


 말은 혈액순환을 좋게하면  하지정맥류 증상도 개선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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